[갈 길 먼 교권보호]
업무·민원부담에 기피 1순위
사안조사 등 경찰 이관 검토 중
"경찰 담당 땐 교육·화해 약화"
학폭 감소·업무 보상 확대 필요
교사들의 '기피 업무 1순위'인 학교폭력 업무 일부를 경찰에 이관하는 방안이 추진되면서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교단에서는 학교폭력이 교사가 다루기 어려운 사안인 데다가 학부모 악성민원과 교권 침해를 초래하는 주요인이었다며 이런 조치를 반기는 분위기다. 반면 교육계 일각에서는 경찰은 아무래도 학교폭력을 처벌 관점에서 다루기 쉬워 화해와 회복이라는 교육적 해법과 멀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학교폭력 업무 경찰 이관 추진이 급물살을 탄 계기는 지난달 6일 윤석열 대통령과 교사들의 간담회였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학교폭력은 교육의 영역이 아니다. 경찰이 일임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교육부가 대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경찰이 학교 밖에서 일어났거나 정도가 심한 학교폭력 사건을 전담하는 등 상당한 규모의 업무 이관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에서는 사안 조사 업무만 경찰에 일부 넘기는 소폭 이관 가능성도 제기된다.
학교폭력은 왜 기피 1순위 업무가 됐나
윤 대통령의 발언에 교사 92.1%가 찬성할 만큼(10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설문조사) 교사들의 지지는 압도적이다. 학교폭력 업무를 하면 가해·피해 학생 학부모 양측에서 갖은 민원을 받는 데다가, 제한된 권한으로 사건 진상을 파악하기 어렵고 특별한 보상도 없는 탓이다.
현재 학교폭력 처리 과정에서 개별 학교가 맡는 역할은 △초기 조치 △사안 조사 △보고 △자체해결 또는 교육지원청 이관이다. 경미한 학교폭력 사건(2주 이내의 치료 진단, 지속적이지 않은 경우,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즉각 복구된 경우 등)이라면 학교장이 자체 해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거나 피해 학생 측이 원할 경우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로 넘겨 대응 수위를 결정한다. 학폭위는 원래 학교 단위에 설치됐다가 교사 업무 경감을 위해 2020년 3월부터 교육지원청으로 옮겨졌다.
교사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업무는 사안 조사다. 조사는 교감, 전문상담교사, 학교폭력 책임교사, 학부모로 구성된 전담기구가 담당하는데, 주된 역할은 현직 교사인 책임교사가 담당한다. 이들은 수업이 없는 시간에 △피해·가해·주변 학생 면담조사 및 설문조사 △객관적 입증자료 수집 △보호자 면담 통해 요구사항 확인 △사안 조사 보고서 작성 등의 업무를 해야 한다.
교사들은 강제적으로 증거를 수집할 권한이 없어 특히 학교 밖에서 벌어진 학교폭력 사건의 입증 자료를 수집하기 어렵고, 학부모 요구 수준에 부응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정당한 사안 조사임에도 학부모가 교육청, 권익위 등에 '화풀이 민원'을 제기하면서 부담과 업무가 가중된다"(10월 교총 설문조사 답변)는 것이다. 서울 양천구 초등학교의 학교폭력 책임교사 A교사는 "학부모들은 교사를 '모든 불만을 토해내도 되는 대상'이라고 여긴다"며 "당사자들의 불만과 한풀이를 일일이 듣느라 밤 9시, 10시까지 통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책임교사가 보직(학생부장)을 맡았다면 올해 기준 월 7만 원의 수당이라도 받지만, 부장 교사가 아닌 경우 이마저도 받지 못한다. 수업 시수를 줄여주는 지원 제도도 있지만 A교사는 "현장에선 맡기 꺼려하는 업무"라고 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지난달 개정된 학교폭력예방법에는 △학교장에 책임교사 수업시간 조정 등 지원 의무 부여 △학교폭력 관련 고소·고발을 당한 경우 교육당국이 법률 지원 제공 △정당한 학교폭력 사건 처리는 민형사상 책임 면제 등의 내용이 담겼다.
조사 과정에 사과·화해도... "경찰은 처벌 여부만 초점 둘 것"
그렇다고 경찰에 학교폭력 문제를 이관하는 것이 교권 회복이나 사안 해결에 적합한 방식인지를 두고 교육부 내부에 회의론이 적지 않다. 현행 학교폭력 처리 체계는 단순한 가해자 처벌을 넘어 선도를 목적으로 하는 '교육'의 일부라, 경찰이 대신 맡아 수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범죄가 성립하진 않지만 교육이 필요한 사안일 경우, 경찰이 "혐의가 없다"는 판단을 넘어 추가적 선도 조치를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범죄 수준의 학교폭력은 지금도 경찰이 담당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학교폭력은 처벌 여부와 무관하게 아이들 성장에 치명적인 문제도 포함된다"며 "이런 것을 모두 경찰에게 맡긴다면 아이들을 교육적 차원에서 지도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심창보 서울시남부교육지원청 학교폭력 담당 변호사는 "사안 조사를 받으면서 가해 학생이 반성하고 피해 학생에게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경우도 많다"며 "이런 과정도 교육 영역으로 봐야 하는데, 수사전문가인 경찰보다는 교육전문가인 교사가 하는 게 맞다"고 했다.
실제 업무 이관이 이뤄진다면 담당자가 될 공산이 큰 학교전담경찰관(SPO)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경기 지역 SPO인 B경위는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SPO가 학교폭력 사안을 조사한다면, 불법 행위를 처벌하려 하는 일반 경찰 수사와 다른 게 있을지 모르겠다"며 "아이들을 직접 교육하고 교실 내 관계를 이해하는 선생님이 사안 조사를 하는 게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업무 이관에는 SPO 증원과 관련 예산 확보, 조사 업무를 경찰에 부여하는 학교폭력예방법 개정 등의 과제도 따른다. 현재 SPO는 1,022명인데 전국 초중고교 수는 1만2,027개라 경찰관 1인당 평균 12개 학교를 담당하고 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SPO는 "'1교 1SPO'가 된다면 학폭 처리 업무에 큰 어려움은 없겠지만 교육·화해 기능의 저하가 우려된다"며 "교사들이 사안 조사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이해가 되지만 변호사·장학사·경찰 등에게 자문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게 옳다고 본다"고 했다.
"학교 밖 폭력은 교육청 학폭센터가 전담을"
다만 교사들의 학교폭력 업무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는 데에 이견은 많지 않다. 대안 가운데 교육청 소속 장학사, 변호사 등이 개별 학교의 학교폭력 사안 처리를 돕는 '학교폭력 제로센터'의 기능 강화가 우선적으로 꼽힌다. 학교폭력 제로센터는 교육부의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올해 9월부터 8개 교육청에 시범 도입된 상태다. 박 교수는 "교사들이 껄끄러워하는 학교 밖 학교폭력 사건은 제로센터에서 담당하는 방안을 검토해봐야 한다"며 "교사들 부담을 덜어주면서도 경찰보다는 교육적 차원에서 사건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학교폭력이 빈번한 학교에 맞춤형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다. 박정현 인천 만수북중 교무부장은 "여자고등학교의 경우 1년에 한 건도 학폭이 발생하지 않는 곳도 있다"며 "학폭 사건이 연 20건 이상인 학교에는 전담교사를 한 명 더 배치하는 등 탄력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학교폭력 책임교사의 여타 업무 부담을 더 줄여주고 보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청도 나온다.
무엇보다 학교폭력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2017학년도 3만1,240건이던 학교폭력 사건은 2022학년도 6만2,053건으로 2배 폭증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초등학교 1, 2학년은 학교폭력예방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교육·화해를 통한 해결을 거치게 하자고 제안했고, 교총 등 교원단체는 학교폭력에서 '학교 밖 폭력'은 제외하는 안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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