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고운 사진들에 설렌다.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밥으로 남겨둔 홍시, 소금물에 절인 배추와 무채 파 쑥갓 생굴 생새우 배에 마늘 생강 멸치젓 등 갖은양념을 넣고 버무린 김칫소, 막 담근 김치에 수육을 싸서 서로 입에 넣어주며 깔깔대는 가족들….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오는 빛나도록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에 새빨간 김치를 얹어 먹는 사진을 볼 땐 비릿하고 구수한 젓갈향이 느껴지며 충남 논산 강경장날로 추억 여행을 떠나게 된다.
“살살 좀 밀어유. 내 젓 다 터져유.” 논산 강경장날 시외버스를 타면 어르신들의 급박한 목소리가 들린다. 젊은 여성들은 붉어진 얼굴로 부끄러워하며 버스에서 내리기도 한다. 비릿한 냄새가 나든지 말든지 젓갈 파는 어르신들은 커다란 비닐을 열어 연신 새우젓 상태를 살핀다. 그러고선 좀 편안한 말투로 한마디 또 한다. “귀한 내 젓들 다 터질 뻔했네 그랴.”
지난달 말께 서울 마포구에서도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가 열렸다. 서울이 ‘항구’였던 시절, 서해안에서 올라온 젓갈배가 마포나루에 닿으면 새우젓 파는 사람들로 마포 인근이 붐볐다. “마포 사람들은 맨밥만 먹어도 싱거운 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마포구 염리(鹽里)동은 소금과 젓갈 파는 이가 모여 살았던 마을에서 유래했다.
‘젓’은 새우 멸치 조기 등 생선이나, 조개·생선의 알·창자를 소금에 절여 삭힌 음식이다. 갓난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먹는 ‘생명수’ 젖과 뜻은 다르지만 발음이 [젇]으로 같다. 그런 까닭에 강경 시외버스 속 젓갈 할머니의 외침에 음흉한 눈빛을 보이는 이도 몇몇 있었다.
그런데 젖과 젓이 조사를 만나면 발음이 달라 정확히 소리 내야 한다. “엄마 젖을[저즐] 먹은 아기가 건강하다” “새우젓은[새우저슨] 겨울에 빛난다”처럼 발음해야 한다.
젓갈과 관련해 ‘창란젓’만큼 헷갈리는 것도 없을 게다. 명태 알로 담그는 명란(明卵)젓에 익숙해 ‘창란젓’으로 쓰는 이가 여럿이다. 명란젓과 달리 명태의 창자로 만드는 이 젓갈은 ‘창난젓’이 바른 표기다. ‘황새기젓’ 역시 잘못된 이름으로 ‘황석어젓’이 바르다. 황석어(黃石魚)는 참조기를 뜻하는 한자어로, 누런빛을 띠어 붙여졌다.
임동확의 시 ‘목포 젖갈집’에 나오는 '고집쟁이 아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게 뭔 소용이당가, 맛만 좋은면 그만이제. 바다에 나는 젖이 젓갈인께 그나저나 마찬가지 아녀.” 어문기자인 나도 아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니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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