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감옥 보낸 사건 증인들, 총선 앞두고 활동 재개’
읽고 소름이 돋았다. 기사를 출고한 지 채 20분이 안 돼 내게 도달한 ‘지라시’다. 카카오톡으로 유통되는 이른바 ‘받은 글’이다.
문상철 전 비서관이 ‘안희정 성폭력 사건’ 전후의 서사인 ‘몰락의 시간’을 출간했다는 기사를 8일 전 단독으로 썼다. 그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핵심 참모였다. 피해자 김지은씨의 요청에 처음으로 “돕겠다”고 나선 동료이기도 하다. ‘카톡 지라시’엔 책 출간 사실과 함께 김씨의 또 다른 조력자 신용우 전 비서가 총선 출마를 준비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지라시의 제목에 눈길이 머물렀다. “감옥 보낸”이라는 표현에선 안 전 지사가 무고한데도 억울하게 3년 6개월의 형을 살았다는 어감이 느껴진다. “총선 앞두고”는 정치적인 악의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려는 부사구일 것이다.
그중 ‘백미’는 “활동 재개”라는 표현이다. ‘잠자코 숨어 살아야 할 이들이 세상에 나선다’는 편견 혹은 음해가 감지돼서다. 두 사람이 갑자기 뭘 ‘재개’한 것도 아니다. 3년 전 김씨가 성폭력으로 고통받은 554일의 기록을 엮은 ‘김지은입니다’를 출간했을 때도 비슷한 얘기가 돌았다. “김지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이런 지라시를 유통시키는 사람들이 노리는 건 이것일 테다. ‘가만히 있어라.’ 오랫동안 이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강요해온 ‘침묵’이다. 조애나 버크 런던대 버크벡칼리지 역사학 교수는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의 양상을 분석한 책 ‘수치(Disgrace)’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수치는 대단히 정치적인 감정이다. 자신과 공동체에 수치를 줄 것이라는 두려움은 그 어떤 공격보다도 강력하다.” ‘활동 재개’ 같은 지라시들은 그러니까, 수치를 자극하는 프로파간다다.
실제 신용우씨가 그랬다. 그 역시 2009년부터 안 전 지사와 함께한 측근이다. 실명으로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고 재판에도 증인으로 나서 김씨를 도왔다. 그런 그는 한동안 ‘숨어’ 지냈다고 했다. 정치권에 다시 취직할 수도 없어 2년쯤 트럭에서 닭 꼬치를 팔면서 생계를 해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식당에서 ‘안희정계’ 의원을 마주쳤다. 그는 “나도 모르게 도망치듯 피하다가 ‘내가 왜 그러지’ 싶었다. 다시 돌아가 ‘잘 지내시냐’고 인사를 했다”고 돌이켰다. 이 사건이 그에게는 계기가 됐다. 정의와 불의가 뒤바뀌어 있는 현실을 새삼 자각한 것이다. “불의와 타협하고 강자에 조아리면 성공을 보장받는다고 여길 거 아니에요. ‘안희정 사건’ 이후 주변인들에게 벌어진 현상이 그랬으니까요. 정의를 증명하고 싶습니다.” 그가 ‘안희정계’ 의원이 현역인 지역에 도전장을 내민 이유다.
문상철씨 역시 가만히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믿기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겪은 일들은 공공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치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제2, 제3의 안희정을 마주하게 될 테니까.” 그의 책은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정치를 도구로 선택한 당신께 이 책을 바친다’는 말로 시작한다.
정의 편에 선 이들의 더 많은 ‘활동’을 보고 싶다. 이들의 서사가, 움직임이, 목소리가 더딜지라도 세상은 진보한다는 희망의 씨앗이 되기를 소망한다. 진정으로 가만히, 죽은 듯 지내야 하는 이들은 따로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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