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친윤석열계 핵심 인사들의 희생을 담보하겠다는 차원에서 공천관리위원장 자리를 요구했으나, 김기현 대표가 거부했다. 최후통첩까지 무산되면서 혁신위는 조기해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혁신을 약속하고도 기득권 사수를 위해 이를 걷어찬 김 대표나 친윤계 의원들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혁신위는 어제 김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와 친윤계 의원들의 불출마나 험지 출마를 요구하는 안건을 정식 채택했다.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인 위원장은 대신 “혁신위에 전권을 주겠다고 공언했던 말이 허언이 아니라면 저를 공관위원장으로 추천하길 바란다”며 4일까지 답변을 요구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인 위원장이 공관위원장이 되기 위한 목표를 갖고 혁신위 활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거부 의사를 내비쳤다. “그간 수고를 많이 했다”며 사실상 혁신위의 조기해산을 시사하는 발언까지 덧붙였다.
이런 결론이라면 김 대표가 전권 운운하며 혁신위를 세운 이유가 단순히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로 궁지에 몰렸던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미봉책이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당초 혁신위는 국민들에게 쇄신의 진정성을 입증해 내년 총선 승리를 향한 교두보를 다지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윤석열 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이라고 주장했던 김 대표와 장제원 권성동 의원 등 친윤계 인사들이 앞장서야 했지만, 되레 인 위원장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한 달 넘게 당의 난맥상만 노출했다.
국민들은 개인의 이익 때문에 선당후사 정신을 발휘하지 못한 여당 실세들의 민낯을 똑똑히 목도했다. “혁신을 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신뢰에 스스로 생채기를 낸 셈이 됐다. 그렇다고 당 혁신을 위한 뚜렷한 대안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희생을 요구받았던 실세들은 한 고비 넘겼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겠지만, 혁신위 좌초는 조만간 후과가 돼 돌아올 것이란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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