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안식을 주는 음식이 있다. 소울푸드라고 부른다. 소울푸드는 미국 남부 흑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먹었던 전통 음식을 가리키는 용어였으나, 요즘은 살아갈 힘을 주고 상처 난 마음을 다독여주는 음식을 말한다. 주로 자신만의 추억을 간직한 음식이나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을 일컬을 때도 사용된다. 나에게도 오랜 기간 해외에 나가 있거나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간절히 생각나는 소울푸드가 있다. 떡볶이다. 매콤달콤한 양념이 듬뿍 묻은 떡을 한 입 베어 물 때면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화가 땀이 되어 등줄기를 타고 내려온다.
어린 시절 하굣길에 친구들과 먹던 불량식품 떡볶이에 대한 추억이 있다. 당시 학교 근처 문방구에서 팔던 떡볶이는 위생시설을 갖추지 않고 조리된 탓에 불량식품 1호로 악명을 떨쳤다. 방과 후에 선생님들이 문방구를 기웃거리는 아이들을 잡으러 다니는 일도 허다했다. 10원이면 떡 한 개를 떡볶이판 구석으로 밀어놔 주시던, 손톱 밑에 때가 꼬질꼬질하던 문방구 할아버지의 쪼글쪼글한 손가락 마디가 생각난다. 더러웠지만 더럽게 맛있었다. 친구들과 십시일반 돈을 모아 문방구 앞에서 전자오락을 할 것인지 떡볶이를 먹을 것인지 별것도 아닌 고민을 심각하게 했더랬다. 10원이 없어 5원을 할아버지에게 내미는 날에는 떡을 퍼주던 주걱으로 떡볶이 한 개를 반으로 잘라 파 한 조각과 어묵국물을 플라스틱 컵에 담아주시곤 했다. '덴푸라'라고 부르던 어묵은 20원의 고가라 감히 포크를 꽂을 수 없었지만 국물은 모자람 없이 덜어주셨다. 국물에 작은 어묵 조각이라도 딸려오는 날에는 그 나이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감도 느꼈다.
어린 시절 이후 나는 소울푸드와 함께 많은 추억을 쌓아갔다. 이성친구를 사귀어 보려 DJ가 있는 떡볶이 집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떡볶이 집은 추위를 피해 들어가는 안식처이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바쁜 일과로 식사를 놓쳤을 때엔 포장마차 떡볶이를 철근같이 씹어 먹으며 배고픈 자의 설움을 달래기도 했다.
보잘것없는 길거리 음식이지만 나와 비슷한 40·50대 또래들은 떡볶이에 대해 비슷한 경험과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 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박형준 부산시장 등 정·재계 인사들이 부산 중구 부평깡통시장을 찾아 떡볶이, 빈대떡, 비빔당면 등을 시식해 화제가 됐다. ‘2030세계박람회(엑스포·EXPO)’ 유치가 불발됐지만 정·재계가 함께 부산 지역 경제 발전에 힘쓰겠다는 약속의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한다.
VIP들의 떡볶이 투어 소식을 접하며 그들의 길거리 음식은 나와 어떤 추억을 공유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애초에 그들은 나와 인생의 출발점이 다를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떡볶이 몇 접시 팔아준다고 경제가 살아나겠어.' 삐딱한 마음이 앞섰지만 좋은 일을 하러 가셨다는데 굳이 나쁜 표현으로 비방할 필요는 없었다. 설령 그들의 길거리 음식에 추억이 담겨 있지 않더라도 실패의 아픔에 대한 작은 치유가 되었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서민들의 소울푸드를 통해 본인이 살아온 것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무엇을 직접 할 수 있을 것인가를 한 번 더 생각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어린 시절 먹었던 떡볶이 맛이 그리워 그 맛을 찾아 이집저집 떡볶이 순례를 해본다. 하지만 예전의 그 맛을 아직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 시절만큼 순수하고 너그럽지 못한 마음 탓일까? 그만 삐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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