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을 읽는다.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그렇게 시작하는 전문(前文)에 "왜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국민일까"하고 갸우뚱했던 정도만 기억난다. 시험 공부한다고 듬성듬성 발췌독했을 것이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총 10장, 130조가 전부다. 통독에 그리 오랜 시간은 필요치 않다. 많은 시간도, 포커싱할 탁상등도, 조문에 힘줘 줄쳐야 할 빨간펜도 필요 없다. 그럼에도 크게 내키지는 않는다.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고, '대통령' '비상계엄'이란 말만 이어간다. "대통령, 자기가 뭐라고,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그리고 군대를." 쌓인 분노를 덜어내고 편한 잠을 좀 자고 싶었다. 대통령이 강요한, 비자발적 공부였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다." 제4장 제1절, 대통령 관련 조문(제66조1항)은 이렇게 시작한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나야 할 원수(怨讐) 아니고, 별 다섯 개 원수(元帥) 아니고, 대한민국의 우두머리 원수(元首)다. "누군가에겐 선망이겠지." 위를 올려보기보다, 옆을 돌아보기보다, 아래를 내려보길 좋아하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긴급조치(제76조), 계엄(제77조)은 공무원 임면(제78조), 사면(제79조)과 함께 헌법이 준 권력이었다.
임기(제70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로 명시돼 있다. 최근 누구에게 물었다. "5년 단임제라서, 대통령들 문제가 많지 않으냐." 그는 답했다. "그 덕에 독재자는 없지 않으냐." 또한 덧붙였다. "중임이나 연임제였다면, 예컨대 김영삼 아들이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몰라." 고개를 끄덕였다. 연임제였다면 지금 대통령은 검찰과 감사원 등 총칼을 총동원해 '야당을, 이재명을' 비오는 날 먼지 털어내듯 두들겨 패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8년 대통령이 그렇다면, 끔찍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행한 희대의 '뻘짓'에 대통령제를 이제 바꿔보자고들 한다. 본보가 1일부터 3회에 걸쳐 기획 보도한 '대통령제, 새로고침'은 그 육성들의 문자 전환이다. 보도를 앞두고 회사 내 믿고 따르는 누군가 질문했다. "그래서 결론은?" 마음속 선호는 있었지만 보도에는 최대한 담지 않으려 했다. 정치적 셈법에, 본인의 이해득실에, 거론되는 대안마다 조금씩 오염돼 있다고 봤다. 5년 단임의 대통령제는 그 덕에 38년을 온전히 버틸 수 있었다. 중요한 건, 국민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말할 통로를 열어주고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국민을 대표한다." "국민의 뜻이다." 더 이상 입만 살아있을 게 아니다.
조문을 다시 본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1조2항.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제7조1항.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제10조. 관저에 엄폐된 채 "끝까지 싸우겠다"는 윤 대통령은 이 서럽고도 아름다운 조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을까?
'유아독존', 힘으로 모든 걸 짓누르려는 대통령과 심리적 연결고리는 이미 끊어졌다. 신뢰와 믿음은 무용한 단어가 돼 버렸다. 못난 대통령을 원망하며 관저가 있는 용산 쪽을 바라본다. 체포영장 집행을 두고, 떠들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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