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기로 마음먹기까지 3년이 넘게 걸렸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출산의 고통과 육아의 고충에 지레 겁부터 났다. 천정부지 집값과 사교육비에 출산과 육아는 언감생심이었다. 부모가 되기로 결심한 건 이를 상쇄할 인생의 특별한 존재가 궁금해서였다. 뼛속까지 이기적인 개인이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목숨까지 기꺼이 바치는 존재에 대한 이상(理想)이 출산과 육아라는 현실을 눌렀다.
하지만 이런 이상은 다시 냉엄한 현실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 청담동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아홉 살 동원이가 숨졌다. 술에 취한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인 이 귀한 아이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가해자에게 검찰은 징역 20년을 구형했지만 1심 재판부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아이를 차로 치고도 집까지 도주했던 가해자는 다시 돌아와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는 이유만으로 뺑소니 혐의를 피했다.
지난달 24일 2심 재판부는 가해자가 혐의를 인정하고, 암 투병 중이며, 5억 원대 공탁한 점을 들어 1심보다 형량이 2년 더 줄어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우리 동원이는 9년 2개월을 살고 떠났는데, 가해자는 징역 5년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라는 아버지의 절규는 현실에 짓밟힌 이상이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는 현실과 싸우는 투사(鬪士)가 됐다. 동원이 같은 아이가 다시는 없도록 어린이와 보행자 안전을 보호하는 내용을 강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동원이법)이 올해 1월 국회에서 발의됐다. 피해자 합의 없이 감형을 노리는 공탁금 제도 폐기에도 목소리를 냈다. 동원이의 이름을 딴 장학회도 만들었다. 짓밟힌 이상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하지만 가해자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되면서 이상은 산산이 깨졌다. “동원이의 희생으로 과연 세상을 바꾸고 있는지 매일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데 바뀐 게 없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고 부모는 절규했다.
투사가 된 부모는 또 있다. 2018년 12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숨진 청년 김용균(당시 24세)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그는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 5년간 법적 투쟁을 했다.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였던 아들과 같은 희생이 반복되지 않게 중대재해처벌법(지난해 1월 시행)을 만들었다. 아들의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어 또 다른 아이들을 품었다.
그도 절규했다. 대법원은 7일 김용균씨의 사고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당시 서부발전 사장을 모두 면책했다. 사고 책임자 누구에게도 실형을 선고하지 않았다. 처벌할 법을 만들었지만, 정작 아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내 자식의 목숨이 내 목숨보다 소중한데. 천만금, 억만금을 줘도 용균이랑 비교 자체를 하고 싶지 않은데, 용균이 같은 노동자가 일하다 죽으면 기업은 500만 원도 안 되는 벌금만 낸다고 생각하면 너무 기가 막힌다”는 그의 분노는 우리의 현실이다.
2014년 4ㆍ16 세월호 참사(사망ㆍ실종 304명)와 지난해 10ㆍ29 이태원 참사(사망 159명) 등 숱한 대형 참사들로 수많은 부모들은 이상을 찾아 헤매는 투사가 됐다. 억만금의 저출생 예산을 퍼붓는데도 아이를 지키지 못하는 사회에서 태어날 아이는 없다. 합계출산율 0.7명보다 무서운 건 아이를 낳으려면 투사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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