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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불복 수사’를 받지 않을 권리

입력
2023.12.18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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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투약 의혹을 받는 가수 지드래곤(권지용)이 11월 6일 인천논현경찰서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마치고 나와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마약 투약 의혹을 받는 가수 지드래곤(권지용)이 11월 6일 인천논현경찰서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마치고 나와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여기 두 건의 마약류 사건이 있다. 공통점이 세 가지다. ①제보자 신고(또는 진술)로 수사가 시작됐고 ②피의자가 상당한 재력가이며 ③범행 의혹 장소가 서울 강남이란 점이다.

차이는 하나. 한 사건은 인천경찰이, 다른 건은 서울경찰이 맡았다. 그러나 바로 이 ‘수사주체’의 차이로 인해, 두 수사는 매우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첫 사건은 가수 지드래곤의 마약류 투약 의혹이다. 이 수사는 강남 유흥업소 실장의 제보로 시작됐는데, 지드래곤의 이력(기소유예)을 아는 대중은 입건 소식만 듣고도 투약 혐의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소변, 모발, 손발톱 그 어디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인천경찰청이 가진 패는 실장의 진술이 전부였다. 그래서 이 사건은 ‘제보만 추종하며 피의자 방어권을 무시한 무리한 수사’란 비판을 받았다.

두 번째 사건. 주인공은 검찰에서 꽤나 끗발 날렸던 차장검사의 처남이다. 처남 부인의 제보가 시작이었다. 진술만 있었던 지드래곤 쪽과 달리, 이쪽에선 물증이 넘쳤다. 액상대마 흡연장치, 대마를 피우지 않겠다는 각서, 가족끼리 대마 문제를 의논한 메신저 기록 등이 있었음에도 불송치 결정이 났다. 소변·모발 검사는 신고 후 석 달 보름이 지난 뒤 실시됐다. 손발톱까지 박박 긁어낸 지드래곤 수사와 비교하면, 같은 나라 경찰이 맞나 싶게 수동적이다. ‘떠먹여주는 제보도 받아먹지 못했다’는 지적, 검사 인척이라 봐줬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천경찰의 의욕이 앞섰던 것은 분명하지만, 수사팀을 과하게 비판하는 시선엔 동의하지 않는다. 마약 사건에서 구체적 진술이 있음에도 ‘물증이 없다’며 덮고 가는 게 더 문제다. 수사가 정돈되지 않았던 측면은 있을지언정, 진실을 찾으려는 수사관의 본분을 어기진 않았다. 더 문제가 되는 쪽은 “다른 사건이 있다”는 이유로, 마약류 수사를 미룬 서울경찰의 부작위다.

물론 전국 모든 수사기관에서 동일한 강도와 속도로 수사가 이뤄질 리 없다. 지휘관의 의지, 수사관 숙련도, 수사팀 업무 과중 정도가 천차만별이라서다. 그러나 위에서 소개한 두 사건은 그 변수들을 고려한다고 해도, 진실을 찾으려는 적극성에서 너무나도 심한 차이가 났다.

구청이나 세무서에서도 그래야겠지만, 특히 수사와 사법은 그 어떤 국가작용보다 균질함이 요구된다. 대체로 형사 사건엔 사람의 운명과 관계인들의 인생이 걸려 있다. 소규모 경찰서 형사의 열정과 서울청 광역수사단 형사의 의욕이 다르지 않을 것이란 믿음, 작은 지청 검사의 법 적용과 서울중앙지검 특수검사의 법적 판단에 차이가 없을 것이란 신뢰 위에서, 국가 권력작용인 수사의 정당성은 시작된다.

법원·검찰 조직에 ‘엘리트주의’가 허용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균질성을 유지하기 위한 예외다. 이에 비해 경찰 조직은 인원도 많고 입직 경로가 다양해, 수사 균질도에서 애로점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수사경찰을 분리해 국가수사본부란 조직을 창설한 이유 중 하나가 수사역량을 상향 평준화하기 위해서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그럴 수 있다"거나 "어쩔 수 없다"고 하기 전에, 피해자나 제보자, 고소·고발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우리네 인생이 아무리 운칠기삼이라지만, 어떤 수사기관이 맡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이 확확 바뀌는 ‘복불복 수사’를 믿고 살 순 없지 않은가.

이영창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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