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대 여성 10명 중 3명만 결혼 생각이 있다'는 통계청 설문조사 결과가 머리와 마음을 동시에 때렸다. 불과 몇 년 전 내가 '그 3명' 중에 하나였던 때문일까. 요즘으로선 흔치 않게 20대에 결혼하기를 선택한, 시류에 맞게 '딩크'로 살려다가 권태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아이까지 낳은 여성으로서,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세태이기도 한 이야기 하나를 풀어보려 한다.
81학번인 엄마 아빠는 녹록잖은 시대에 살았다. 출산을 택한 여성 동료 열 중 여덟이 회사를 그만뒀다. 그 험지에서 자신을 지키겠다고 수십 년을 꿋꿋하게 버틴 엄마 뒤에는, 그런 선택권마저 없어 서글펐던 양가 할머니들의 기꺼한 희생이 있었다. 특히 동생은 세상에 난 지 3주 만에 저 멀리 땅끝 마을 친가로 보내져 몇 년을 그곳에서 지냈다. 달리 방법이 없던 부모님은 몇 달에 한 번 둘째 얼굴을 확인하며, 육아에 지친 조부모님의 표정을 애써 외면하며 매번 울음을 삼켰다.
30여 년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부모의 설움은 아주 비슷한 모양으로 우리에게 이어졌다. 나는 스물여덟, 남편 스물일곱이었던 2018년에 결혼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 4년 만에 아이를 낳았다. 아이의 미래를 그리는 것보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친정 부모님을 설득하는 작업이었다. 우리 자매를 여의며 터전을 옮길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께 '다시 서울로, 웬만하면 내 집 가까이로' 오시라고.
전업 육아를 해본 적이 없는 엄마 아빠는 뒤늦게 육아전쟁에 끌려들어왔다. 이제 맘 편히 여가를 즐길 나이도 됐건만 손주 때문에 점심 한 끼도 나가 먹질 못한다. 아이를 들쳐 업고 소아과 '오픈런'을 하는 일은 이젠 일상이 됐다. 이번에도 달리 방법은 없었다. 딸과 사위에겐 숱한 돌발 상황에 대응하며 일해줄 시터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인 탓이다. 부모의 희생으로 꾸역꾸역 육아 공백을 땜질한 우리는, 바깥에선 '아이가 일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불가능을 마치 가능한 일인 것처럼 행세하며 쓸모를 증명해내고 있다. 각오는 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에너지가 든다.
어쩌면 배부른 투정이라는 걸 잘 안다. 내 주위 많은 육아 동지들은 여전히 답 없는 선택지 위에서 헤매고 있다. 시터 지원자들에게 되레 퇴짜를 당하거나, 눈치 안 보고 저녁까지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을 찾아 이사를 다니거나, 회사에서 '승진 포기자'라는 꼬리표를 달고서. 오늘도 "임신하면 쓸모없어진다, 임신 순서를 정하라"고 대학원생들을 몰아붙인 한 국립대 교수의 기사를 마주하며 맥없이 움츠러든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출산율 0.7대라는 숫자에 곳곳에서 불안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태어나면 1억 원 지급' 등 너나 할 것 없이 사활을 건 정책도 쏟아낸다. 그런데 청년세대는 요지부동이다. 결혼, 출산, 육아를 감당하기엔 각오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다는 사실을, 부모와 또래의 삶을 통해 매일같이 각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율 저하는 국가 존립의 위협"이라는 구호 말고,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는 청년들 앞에 놓인 '각오의 벽'을 허물 파괴적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년 시행될 정부 차원의 저출산 정책이 이미 20개에 달하는 상황에서, 부분적인 처방만으론 현실은 나아질 것이 없다. 마침 정부가 내년 초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의 전면 수정판을 내놓는다고 한다. 이 위기 상황을 타개할 변곡점이 될 수 있길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