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석방 이후 이상 행동
속삭이듯 말하고 음식 남겨
가족 두고 왔다는 죄책감도
"치료 오랜 시간 걸릴 듯"
"닥쳐. 자리에 앉아. 소리 내지 마!"
최근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의 한 병원 의료진은 입원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납치됐다 이스라엘로 돌아온 아이들은 이런 말을 아랍어로 내뱉었다. 자신들을 붙잡아두던 남성들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정신적 충격과 학대 등 억류 기간 겪었던 끔찍한 기억과 싸워야 하는 어린아이들에게 '석방'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21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 하마스가 풀어준 전체 인질 105명 가운데 미성년자는 37명에 이른다. 석방된 어린이들은 체중 감소와 피부 염증 등을 빼면 큰 외상 없이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연령(10개월~18세)도, 납치 전후 사정도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은 약 7주간의 납치 기간 경험한 충격과 학대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게 현지 의료진의 설명이다.
정신적 충격은 이상 행동으로 이어졌다. 악몽과 야뇨증에 시달리는가 하면, 부모와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들도 많았다. 의사의 질문에 마치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고, 석방된 지 하루가 지나서야 얼굴에 겨우 미소를 띠었다. 음식도 잘 먹지 않았다. 왜 많이 먹지 않느냐는 의사의 질문에 "나중을 위해 남겨 놔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소음에 유독 취약한 모습을 보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말도 자주 했다.
가족을 남기고 홀로 풀려난 아이들은 죄책감에도 시달렸다. 사하르 칼데론(16)은 지난달 27일 남동생과 함께 52일 만에 풀려났지만, 함께 억류됐던 아버지 오페르 칼데론(53)은 돌아오지 못했다. 이스라엘로 돌아와 어머니와 언니 등 다른 가족과 재회했지만 기쁜 마음도 잠시였다. 불면증과 공황 발작 등에 시달리는 그는 "아버지를 두고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NYT에 전했다. 아버지의 귀환만이 죄책감을 덜어줄 유일한 치료법인 셈이다.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무너져 내린다. 칼데론의 어머니는 "(납치됐던) 아이들은 방문 뒤에 테러리스트가 있다고 생각해 두려워한다"며 "어린 시절을 잃어버렸다"고 토로했다.
이스라엘 의료진도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어린이들의 집단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분주하다. 이스라엘 쉬바 메디컬 센터 어린이 병원에서 일하는 이타이 페사흐 박사는 "아이들은 그들이 알고 있던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며 "치료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WSJ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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