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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멀어진 재벌 ‘일감몰아주기’ 처벌

입력
2023.12.29 17: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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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행위로 기업을 고발할 때 원칙적으로 관여한 총수 일가도 고발하는 방향의 고발 지침 개정을 추진하다가 철회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행위로 기업을 고발할 때 원칙적으로 관여한 총수 일가도 고발하는 방향의 고발 지침 개정을 추진하다가 철회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사익편취’는 기업이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현실적으론 주로 재벌 기업이 총수 일가 지분이 20% 이상(상장사인 경우 30%)인 계열사 등에 일감을 몰아주는 비리가 문제가 돼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비리가 포착될 경우, 사익편취 행위를 벌인 기업(법인)과 사익을 챙긴 총수 일가 등을 고발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공정거래법 고발지침은 부당 이익이 총수 일가로 귀결됐어도 그들이 사익편취 행위를 결재·지시하는 등 명백한 관여가 드러나는 경우만으로 총수 일가 고발을 사실상 제한해 왔다.

▦ 이런 비합리적 고발지침 때문에 뻔뻔스러울 정도의 소송까지 벌어졌다. 태광그룹에서 경영기획실이 나서 이호진 전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T사와 M사의 김치와 와인을 전 계열사가 구매토록 해 약 130억 원의 매출을 몰아줬다. 공정위는 이 전 회장의 지시 정황, 사익의 종착지가 이 전 회장 일가라는 점이 명확함을 들어 과징금 부과(21억8,000만 원)와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 전 회장과 태광그룹 19개 계열사는 결재·지시 등 관여의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처분 취소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 원심은 이 전 회장의 관여 정황이 명백하지 않다며 태광 측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3월 결재·지시 증거가 없어도 이 전 회장 등이 김치와 와인 판매를 장려하는 태도를 보였거나, 몰아주기 관련 보고를 받고도 명시적으로나 묵시적으로 승인했다면 회사에 대한 이 전 회장 일가의 실질적 영향력, 부당이익의 귀결 등을 감안해 공정위 처분이 정당했다고 최종 판결했다. 총수 일가 고발 및 처벌의 관건인 ‘명백한 관여’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판결을 내렸던 셈이다.

▦ 대법원의 진전된 해석과 판결에 맞춰 공정위는 지난달 일감몰아주기 등 사익편취를 저지른 회사를 고발할 때 부당 이익의 최종 수혜자인 총수 일가를 원칙적으로 함께 고발하는 지침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하지만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단체가 반발하고, 정부 내에서도 민간 주도 성장을 추구하는 정책기조에 맞지 않는 ‘기업 옥죄기’로 비칠 수 있다는 등 묘한 기류가 흐르더니 결국 공정위가 해당 내용 개정을 철회한 것으로 지난 28일 확인됐다. 경제활성화를 위한 기업 지원이 국민적 공감을 얻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이번 개정안을 관철하는 공정성을 보여줘야 했다.

장인철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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