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기반시설, 또는 ‘인프라(infrastructure)’는 도로나 항만처럼 경제활동의 기반이 되는 기초시설과 운영시스템 등 사회자본을 말한다. 그런데 인프라는 사회가 발전해도 대개 점점 퇴락하는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시설은 신기술에 도태되고 세월에 낡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시아나 중동 신흥국 도시에 비해 서구 선진국 도시가 상대적으로 지저분하거나 낡은 인상을 주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 인프라 퇴락의 대표적 사례론 뉴욕 지하철을 들 수 있겠다. 1904년 ‘맨해튼 메인라인’ 개통으로 시작된 뉴욕 지하철은 486개 역과 총연장 337㎞로 확장되며 현대 도시지하철의 전범이 됐다. 하지만 개통 70여 년이 지난 1970~1980년대가 되자 최악의 위기를 맞는다. 가뜩이나 차량과 시설 노후화 등으로 낙후된 데다, 스프레이 낙서인 그라피티가 차량과 역사 등에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만연하면서 지하철 전체가 마치 버려진 창고 같은 분위기로 전락했다.
▦ 물이 새고 쥐가 들끓고 범죄까지 창궐했다. 한때는 차량칸에 무장경관이 수색견과 함께 수시로 드나들 정도였다. 바닥까지 추락한 뉴욕 지하철을 되살린 건 보수ㆍ개선 작업이다. 80년대 이래 그라피티 제거, 역사 신설 및 리모델링, 첨단 전동차 투입 등이 점진적으로 이뤄지면서 이용의 불편이 적잖이 해소돼 그나마 지금 수준을 유지하게 됐다. 뉴욕 지하철은 아무리 훌륭한 인프라도 질적 수준에 대한 관리에 실패하면 형편없이 전락한다는 교훈이기도 하다.
▦ 1974년 개통된 서울 지하철은 에스컬레이터, 밝고 넓은 역 구내, 승강장 스크린도어, 쾌적한 객차 등 뉴욕 지하철에 비할 바 아니다. 하지만 지난 50년간 잘 관리돼 온 서울 지하철이 최근 궤도 이탈 조짐을 보여 답답하다. 서울교통공사가 출근시간대 4호선 혼잡도를 완화한다며 객실 1개 칸을 의자 없는 입석칸으로 운영키로 한 것이다. 공사는 입석칸이 혼잡도를 40%까지 개선할 수 있다지만 단견이다. 이런 식으로 서비스의 질을 하나씩 포기하면 지하철 여건은 점점 악화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걸 대책이라고 내놓은 공사의 편의주의가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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