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준공 30년이 넘은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밝혔다. 평균 13년 걸리던 사업을 ‘패스트트랙’을 통해 절반으로 단축시킨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올해와 내년에 신축 빌라와 오피스텔을 사면 취득·양도·종합부동산세 산정 시 주택 수에서 제외하는 수요 진작책도 내놨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해 신규 택지를 조성하는 방안까지 추진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개발 재건축 규제를 확 풀어버리겠다”고 선언하고 정부도 그동안 규제 대상이던 정비사업을 지원 대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건 의미가 있다.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오히려 공급 부족을 불러 집값을 더 부추긴 측면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3년씩 걸리던 안전진단 문턱이 사라지면 재건축 사업엔 속도가 붙을 것이다. 인허가 물량 급감과 전세사기 등의 영향으로 향후 공급 절벽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주택 공급을 활성화해 보려는 정부의 고민도 엿보인다. 태영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위기도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안전진단을 통과한 재건축 단지조차 공사비 급등에 사업이 멈춰 선 곳이 많다. 공사 중단의 원인인 분담금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재건축 절차를 간소화한다고 공급이 늘지 의문이다. 더구나 안전진단을 없애는 건 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다. 지난해 정부가 공언한 ‘분양가상한제주택 실거주의무 폐지’도 결국 국회에 막혀 시장 혼란만 초래했다. 똑같은 전철을 밟아선 곤란하다. 총선을 앞둔 선심성 발표란 지적이 나와선 안 된다.
무엇보다 신축 소형 주택을 주택 수에서 제외하기로 한 건 자칫 '갭투자'를 다시 부추길 수 있어 우려된다. 그동안의 정책 방향과도 안 맞는다. 이미 사상 최대인 1,875조 원의 가계 빚 폭탄만 더 키울 수 있다. 지난달에도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3조 원이나 증가했다. 한쪽에선 가계부채를 관리하겠다고 하는데 한쪽에선 또 빚을 내 빌라와 오피스텔을 사라 한다. 정부 스스로 앞뒤가 안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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