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C레벨(임원)’의 정점인 최고경영자(CEO) 자리는 달콤하다. 겉으로는 “책임이 크다” “골치 아픈 일 많다”고 투덜대지만, 한번 꿰차면 열이면 열 기를 쓰고 연임에 매달린다. 한 금융사 CEO는 사석에서 “3연임, 4연임을 해도 내려놓고 싶지 않은 자리”라고 털어놓았다. 민영화된 공기업이나 금융지주사 등 소유분산기업, 이른바 ‘주인 없는 기업’의 경우 역대 CEO들의 숱한 잔혹사에도 불구하고 물밑에서 정부와 살벌한 연임 전쟁을 벌이는 이유다.
□ 연임을 위해서라면 여기저기 줄을 대고 이사회에 ‘참호’를 구축하는 건 기본이다. 없던 규정을 만드는 등 꼼수로 발버둥을 친다. A금융사는 최근 CEO 선임 당시 70세 미만이면 재임 중 70세를 넘겨도 임기(3년)를 마칠 수 있도록 내부규범을 바꿨다. 현 CEO가 3연임에 도전할 내년에 68세가 되자 임기를 1년이라도 더 늘리자는 심산이다. 심지어 과거 B협회장은 업무공백 차단을 명분으로 차기 선임까지 현 협회장이 직무를 계속하도록 정관을 바꿨다. 단 한두 달이라도 자리를 더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 끝내 떨치지 못한 연임 유혹에 화를 겪는 이들도 많다. 포스코는 이구택(6대) 정준양(7대) 권오준(8대) 회장 모두 연임에는 성공했지만 정권에 밉보인 대가로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최정우 현 회장(9대)도 3연임 과욕을 부리다 국민연금에 제동이 걸렸고, ‘초호화 이사회’로 경찰 소환이 임박했다. 역시 ‘CEO 연임의 무덤’으로 불리는 KT의 구현모 전 대표도 국민연금을 앞세운 정부 반대에도 연임을 고집하다 낙마한 뒤 재임 시절 ‘보은 투자’ 의혹으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 4연임 도전 여부에 관심이 쏠렸던 백복인 KT&G 사장은 지난주 연임을 포기했다. 최장수 CEO 기록은 9년으로 마무리하게 됐다. 앞서 KT와 포스코 전례를 보고 자진해서 물러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로써 민영화 공기업 3곳의 CEO는 현 정부에서 모두 교체된다. 4대 금융지주 회장도 치열한 기싸움 끝에 현 정부에서 아무도 연임에 성공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와 CEO의 ‘달콤살벌’한 연임 전쟁에 따른 피해는 이들 기업의 ‘진짜 주인’인 주주와 임직원들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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