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 인터뷰]
尹정부 '원맨크라시' 국정 운영부터 바꿔야
한동훈 투입 효과에도 尹과 차별화 필수적
野, '서울의 봄' 속 안이한 육본 장군들 같아
혁신 못 만들면 총선 패배 후 변화 강제당해
제3지대 빅텐트? 촉박한 시간이 추동할 수도
4월 총선은 지난 대선에 이어 적대적 진영 정치 환경 속에 치러진다. 대통령 임기 중반에 열리는 총선에선 통상 정권심판론이 강하게 작동한다. 정권심판론이 60% 안팎으로 높은 상황임에도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30%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그새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등판시켜 '정권심판론 대 세대교체론'으로 구도 전환에 나섰다. 진영 정치에 빠진 여야를 동시에 비판하는 개혁신당(이준석 신당), 새로운미래(이낙연 신당) 신당 세력들은 제3지대 빅텐트를 추진하면서 총선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15일 한국일보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번 총선을 "한국 정치를 리세팅하는 계기"라고 규정했다. "지난 대선에서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총선 결과로 국민들이 어느 세력에 힘을 확실하게 실어줄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극심한 진영 대결과 정치 현안 속에 미래를 좌우할 정책 경쟁이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기후변화, 저출생·고령화, 인공지능(AI), 미중 대립 등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의제들이 부각되지 않아 정치적 판단으로만 좌우되는 선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높은 정권심판론과 30%대 초반의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을 기반하면 여당의 고전이 당연한 선거다. 그러나 야당이 혁신하지 않고 여당은 '윤석열 리스크'를 해소한다면, 한 위원장의 세대교체 전략이 정권심판론을 극복할 수도 있다. 이 전 수석은 총선 전망에 대한 우문에 '공심위상(攻心爲上·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최상책)'이라는 현답을 내놓았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며 "진영 대치를 먼저 끊어내는, 큰 정치를 하는 쪽이 국민의 마음을 얻어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尹, 국정운영 방식, 영부인 문제 해결해야
-총선은 회고적 투표 성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를 평가한다면.
"야박한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내각, 여당과 함께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 혼자 주도하는 '원맨크라시'로 보인다. 데모크라시(민주주의)와 다른 모습이다. 김건희 여사가 전방위적으로 국정에 관여하는 듯이 비치는 것도 아킬레스건이다. 최근 명품 백을 받는 영상에서 "적극적으로 남북문제에 나설 생각"이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만약 김 여사가 국정에 관여하고 있다면 '공동대통령'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논란을 없애기 위해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부인 힐러리에게 공식 직책과 역할을 부여한 사례를 벤치마킹해 봄 직하다. 대선 경쟁자였던 야당 대표를 사법적으로 단죄하려는 것도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를 부각할 수 있겠지만 야권의 동정론을 키우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윤 정부에 대한 지적에도 '한동훈 효과'는 나타나고 있다.
"기존 보수에 대한 불만과 참신한 인물에 대한 갈증이 결합돼 기대를 받고 있다. 한 위원장이 기성 정치인과 다른 점이 분명히 있고 정치 지능도 높아 보인다. 그런데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을 내세운 것은 의외다. 6·29 선언이나 박근혜 비대위처럼 현직 대통령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다. 당장은 극심한 진영 대결을 의식해 야당과의 차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모습이다."
-한 위원장의 '동료 시민' 표현에 호평이 많은데.
"동료 시민을 인용하는 것 자체는 좋은 기획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레드 아메리카(공화당)'와 '블루 아메리카(민주당)'로 나누지 말고 '하나의 미국'으로 대해야 한다는 통합 메시지로 사용한 말이다. 그러나 한 위원장의 동료 시민은 '우리 편'을 지칭하고 야당을 적으로 돌리는 분열 메시지로 사용되고 있다."
-한 위원장이 정치적으로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쓴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책 'Tyranny of the Minority(소수의 폭정)'에는 '민주주의가 작동하려면 정당들이 선거 패배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 ①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전망과 ②선거에서 지더라도 모든 것을 잃지 않는다는 신뢰라는 조건이 필요하다'는 대목이 있다. 역으로 보면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경쟁 정당을 무력화하면 안 된다는 뜻인데, 한 위원장이 이를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 여권 위기의 핵심 요인인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하지 않는다면 한 위원장도 '윤 대통령이 보낸 여의도 총독'과 같은 지위를 벗어날 수 없다."
-여당 혁신 여부는 공천 결과로 보이지 않겠나.
"친윤 핵심 이철규 의원이 공천관리위원에 포함돼 '윤심' 논란이 불거지자, 한 위원장은 '당을 이끄는 것은 나"라고 반박했다. 한동훈식 공천을 하고자 했다면 친윤 핵심을 공관위원으로 둘 이유가 없다. 어떤 자리에 어떤 인재를 쓰느냐가 정치인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한 위원장이 부산 등에서 보인 대중 동원력이 상당했다.
"한 위원장이 정당 조직력을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여론의 호응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2011년 안철수와 같은 메가 태풍 수준은 아니다."
이재명은 尹과 '거울정치'... 민주당은 '부자 몸조심'
-높은 정권심판 여론에도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윤 대통령과 적대적 공존 전략을 취하고 있는 탓이 크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서로 '거울정치'를 하고 있는데, 서로에게서 존재 이유를 찾고 두 사람 모두 권력을 개인화하고 있다."
-움직이고 있는 여당과 달리 민주당은 너무나 조용하다.
"축구에 비유하면 지고 있는 국민의힘은 선수와 전술에서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반면 야당은 시간 끌기만 하면서 침대축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권심판 정서만 믿고 부자 몸조심하는 꼴이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 죽기 살기로 덤비는 반란군에 눈치 보면서 안이하게 대응하던 육군본부 진영 장군들이 허무하게 지지 않나. 현재의 민주당과 겹치는 모습이다."
-이 대표에게 불만이 있어도 의원들이 공천을 의식해 입을 닫고 있다.
"정당이 혁신 동력을 내부에서 만들지 못하면 결국 '선거 패배'라는 외부 충격으로 변화를 강제당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지난 대선에서 운이 따르지 않아 졌다는 인식이다. 그런 오만한 시각으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을 대한다면 큰코다칠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기디언 래크먼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는 트럼프, 푸틴, 시진핑, 에르도안, 네타냐후와 같이 각국에서 권위주의와 포퓰리즘, 공포 마케팅, 네포티즘(친족중용주의) 등을 결합해 나타난 지도자들을 '스트롱맨 정치'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당선은 사회경제적 갈등이란 흐름 속에 구조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여기에 한국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검찰 대 민주당' 구도가 고착됐고, 검찰개혁을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더 날카로워졌다. 이 같은 대립구도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국민의힘 대 민주당' 구도를 대체하며 윤 대통령이 등장할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이 '검찰 출신' 한 위원장을 선택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전략적 의미가 있다."
-이 대표는 당무 복귀 후 무얼 해야 하나.
"민주당은 2016년 총선부터 2020년 총선까지 모든 전국 선거를 모두 이긴 주도정당(leading party)이다. 현재 야당이지만 대한민국을 이끄는 정당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데, 정부 반대에만 몰두하면서 자꾸 움츠러들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냐고 묻는다면 '먼저 져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주도정당에 걸맞게 대치 정국을 먼저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확실한 지역기반이 없는 게 제3지대 약점
-최근 제3지대 빅텐트 시도는 어떻게 보나.
"양당제에선 양당으로 담보할 수 없는 정치적 지향이 사표가 되기 때문에 신당 요구가 나오기 마련이다. 총선에서 유의미한 의석을 확보했는지를 기준으로 할 때 1992년 총선 정주영의 통일국민당(31석), 1996년 총선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50석), 2016년 총선 안철수의 국민의당(38석)이 성공사례다. 하지만 이후 소멸하면서 유권자들이 신당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진영 정치 폐해가 큰 만큼 제3지대 신당이 소구력을 갖지 않을까.
"제3지대 수요는 있지만 이전과 주도 인물과 세력이 약하고 확실한 지역기반이 없어 보인다. 소선거구제에서 정당 지지율을 의석으로 환원하려면 지역기반이 중요하다. 이준석 전 대표는 2030대 남성이란 지지층은 있지만 지역기반이 없다. 이낙연 전 대표도 호남 출신이지만 민주당 호남 현역들이 동참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정권심판을 원하는데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을 묶어낼 수 있다면 성과는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제3지대 신당이 지속가능하고, 정권심판뿐 아니라 거대 양당 견제에 필요한 선택지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야 한다."
-정체성도 다르고 시간이 촉박한데 빅텐트가 가능한가.
"당장 각자도생하겠지만 선거가 임박할수록 힘을 합쳐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촉박한 시간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강정책부터 하나씩 밟아가다 보면 세력 간 정체성 차이가 부각되면서 원심력이 작동할 수 있다. 반면 독자적으로 선거에 나설 경우 생존이 어렵다고 판단한다면 구심력이 작동한다. 정체성 차이 등의 이견은 리더들 간 조율로 잠시 접어둘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5개 신당 세력이 하나의 텐트 안에 들어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큰 텐트가 만들어질 수는 있다."
-비례대표 선출 방식도 빅텐트의 변수이지 않나.
"병립형이 연동형보다 불리하겠지만 판이 완전히 바뀔 정도는 아니다. 병립형에서도 정권심판론자들이 지역구 투표는 민주당을, 정당투표는 신당을 밀어주는 분할투표가 나타날 수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