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리스크’ 해법을 놓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국민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사퇴 요구를 전달받은 한 위원장은 어제 이를 확인하며 “내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라고 정면 거부했다. 정권 2인자로 불려온 여당 사령탑을 대통령이 한 달 만에 낙마시키려 하고, 당사자는 반발하는 이 혼란은 지켜보는 국민들마저 민망하고 낯 뜨겁게 한다. 민생이 무너지는 지금 당정 최고 수뇌가 이렇다면 국민은 정치에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이번 사태의 출발은 이른바 ‘명품백 충돌’이다. 재미교포 목사가 김건희 여사에게 명품백을 선물하는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찍어 폭로한 문제를 대통령실과 한 위원장 측은 다르게 보고 있다. 대통령실은 몰카 공작만 인정할 뿐 명품백 수수 문제는 침묵하고 있다. 대통령 부인이 수백만 원짜리 백을 개인 사무실에서 받는 것 자체를 문제시하는 민심과는 다른 것이다. 총선을 치러야 하는 한동훈 지도부로선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 위원장이 국민 정서를 충분히 반영한 것도 아니다. 그는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 등 원론적 언급을 했을 뿐이다. 한 위원장 측 김경율 비대위원이 김 여사 사과를 요구하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를 운운한 것이 감정 대립으로 확전됐다는 얘기도 있으나, 분명한 사실은 이 문제가 시간에 덮일 사안은 아닌 점이다.
총선이 80일도 안 남은 가운데 벌어진 이번 사태가 일각에서 지적하는 ‘약속 대련’이든 실제 상황이든, 국정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이 한발 물러서 매듭을 풀어야 한다. 대통령이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대통령 권위와 국정신뢰는 흔들리고, 국정혼란도 피하기 어렵다. 정작 친윤계는 “윤 대통령이 내어준 비대위원장을 이용해 대선주자 놀음을 한다”며 한 위원장 퇴진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3·8전당대회 때 50여 명의 초선들이 연판장을 돌리며 특정 주자의 당대표 불출마를 압박한 ‘홍위병’식 행태가 재현된다면 민심의 외면을 받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 인사들이 친위세력을 구축한다며 2016년 총선 공천에 개입했다가 선거에서 참패한 역사를 여권은 명심해야 한다. 대통령실과 김 여사는 더 늦기 전에 사태의 본질적 부분을 해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윤 대통령도 당무 개입 논란을 포함해 정국 타개 방안을 직접 내놓아야 한다. 침묵하고 피할수록 국민 마음은 권력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여당이 국민을 이토록 불안하게 해도 되는지 무책임하기 짝이 없지만 이마저 실기하면 민심을 되돌리기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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