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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멸종 위기 1급 동물이자 영물로 여겨지는 산양이 한계령에 자주 나타나고 있다. 국립공원 야생생물보전원 북부보전센터에 따르면 설악산 한계령휴게소 부근과 44번 국도변 양지바른 곳에서 산양 목격 신고가 거의 매일 접수되고 있다고 한다. 천연기념물이기도 한 산양은 개체 수가 적고 사는 곳도 해발 1,000m 가까운 바위 절벽이라 산속 깊이 들어가도 만나기 어렵다. 유독 올겨울 산양 목격담이 많아진 이유는 뭘까.
□ 우선 기상 이변 영향을 꼽을 수 있다. 지난달 중순 설악산엔 12월치곤 이례적인 30㎜도 넘는 비가 쏟아졌다. 더 큰 문제는 곧바로 기온이 급강하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지표면이 깡깡 얼어붙으면서 얼음막이 형성됐다. 평소처럼 12월 눈이 내렸다면 쌓인 눈 속을 파 지표면의 마른 풀이라도 뜯었을 산양이 도저히 풀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형우 북부보전센터 과장은 “ 땅 위가 얼음으로 코팅이 되면서 산양이 먹을 만한 것을 찾아 산 아래나 도로까지 내려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센터에선 탈진된 산양들도 치료하고 있다.
□ 제설 작업 시 도로에 뿌리는 염화칼슘이나 소금도 한 요인으로 추정된다. 산양도 염분 섭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06년 시작된 복원사업에 따라 개체 수가 다소 늘어난 것도 산양 출몰이 잦아진 배경이다. 18년 전 조사 당시 160마리였던 설악산 지역 산양 수는 지난해 347마리로 증가했다.
□ 산양은 200만 년 전 출현했다. 태초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살아있는 화석’으로도 불린다. 인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 땅을 지켜온 산신령 같은 산양이 1964~65년 대폭설 당시 강원도 일대에서 무려 6,000마리나 포획돼 보양식으로 희생됐다. 인간의 오만과 무례는 끝이 없다. 뒤늦게 6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지만 멸종 직전까지 갔다 복원사업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다시 기후변화와 인간의 이기심으로 위태로운 상황이다. 멧돼지나 고라니를 막기 위한 올무나 해태망에 걸려 죽는 경우도 적잖다. 손장익 북부보전센터장은 “설악산을 지날 때 도움이 필요한 산양을 만나면 119나 센터(033-463-9120)로 연락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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