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대학 입시의 성공이 대다수 청소년의 지상과제인 나라에서, 우수한 고교 성적으로 대통령에게 장학금을 받는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현재 정부는 '대통령과학장학금'이란 이름으로, 국내외 이공계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전액과 학업장려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공계 대학생들 사이에선 '대장금'이라는 친근한 줄임말로 불리며, 이력서 한편을 차지하는 명예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여러 정부 지원 장학금 중 유독 이 장학금에만 '대통령' 석자가 새겨진 건 제도 도입 당시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이공계 기피 현상을 완화하고, 과학자로 성장할 인재들을 제대로 대우하기 위해 제도를 신설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같은 해 7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선발된 1회 장학생 110명에게 장학증서를 수여하고 격려했다. "한국의 승부는 과학기술을 육성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였다.
겨우 장학금 제도 하나 신설한 것으로 뿌리 깊은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라질 수는 없었다. 이는 20년이 지난 현재 '의대 열풍'으로 오롯이 증명되고 있다. 대통령과학장학금이 유수 명문대 학생들에게만 집중된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미래 과학인재에게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만큼은 선명했다.
지난해 12월, 대통령과학장학금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초유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파동이 일어난 정부 예산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직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대학원 대통령과학장학금을 신설,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 전문 연구인력을 육성하고 우수인재의 이공계 석·박사과정 유입을 촉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발표처럼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이 다른 전공으로 또는 해외로 유출되지 않고 국내에서 석·박사급 연구자로 성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데는 어떤 정권에서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팍스 테크니카(Pax Technica·기술패권)' 시대로 불리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또 학부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석·박사급 학생들이 장학금 제도에서 소외돼 있었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연관기사
그러나 캠퍼스의 수많은 학생연구자, 이들에 대한 인건비 지급이 버거운 교수들마저 이 제도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R&D 예산 삭감 파동 이후 "과학자로서의 미래가 지워졌다"는 원성이 들불처럼 번진 뒤 나온 선심성 타개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부터 약 100명의 석·박사급 학생들이 대통령 장학금이라는 영광을 안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편에선 더 적은 인건비를 받거나 아예 연구실을 떠나야 하는 것이 현재 학생연구자들이 맞닥뜨린 현실이다.
한정현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부총학생회장은 지난해 11월 이공계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국회 토론회에서 "R&D 예산 삭감으로 인해 초중고교생들에게조차 '과학기술에 희망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면서 소설 '어린왕자'의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명언을 인용했다. "큰 배를 만들게 하고 싶다면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바다에 대한 동경을 심어줘라. 그러면 스스로 배 만드는 법을 찾아낼 것이다"라고.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