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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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자의식이 고도로 발달한 인간이 자신이 아닌 존재를 위해 목숨을 걸고 모든 것을 내줄 때 유일한 이유는 사랑일 것이다. 사랑의 위대함은 예술을 통해 칭송됐지만 사랑조차도 변한다.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한 커플이 사랑하고 결혼하지만 결국 이별하게 되는 5년의 과정을 그린다. 뮤지컬 '퍼레이드'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토니상 작곡상을 두 번 수상한 제임스 로버트 브라운이 작사, 작곡, 극본을 맡았다. 미국 시카고에서 2001년 처음 선보였고 국내에서는 2003년 성기윤·이혜경 주연의 초연, 2008년 재연 이후 15년 만에 공연되고 있다. 독특한 극 형식과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뮤지컬 팬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무명 작가 제이미(이충주, 최재림)와 무명배우 캐시(박지연, 민경아)는 첫 데이트에서 사랑에 빠진다. 제이미는 첫 소설의 성공 이후 작가로 승승장구하지만 캐시는 오디션에 번번이 떨어지며 불안한 미래를 맞는다. 둘은 서로를 응원하며 결혼하지만 각자의 상황과 꿈이 변하면서 이별을 맞는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내용이지만 이 작품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독특한 극의 구조와 아름다운 음악이다.
2편의 모노드라마 엮은 듯한 2인 뮤지컬
2인극이나 2편의 모노드라마를 엮어 놓은 모노뮤지컬에 가깝다. 캐시는 이별부터 만남까지 시간을 역행해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고, 제이미는 첫 만남에서 시작해 시간순으로 이별을 향해 나아간다. 제이미와 캐시가 같은 시간대에서 만나는 건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의 프러포즈와 결혼식 장면이 유일하다. 결혼을 정점으로 이별의 아픔을 간직한 캐시는 사랑의 감정으로 설레던 첫 만남으로 나아가고, 제이미는 여전히 아름다운 캐시를 버리고 다른 여인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떠난다.
무대에는 테이블이 전부이다. 무대가 회전하면서 긴 테이블은 연결되기도 하고 세 조각으로 분리되기도 하면서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다른 방향으로 감정이 흐르는 두 인물의 상황을 시각적으로 연출한다. 무대 뒷면 '엑스(X)' 자로 길게 늘어선 라이트 박스의 조명을 통해 만남에서 이별로, 또 이별에서 만남으로 향하는 제이미와 캐시의 상황을 제시한다. 미장센으로 작품의 구조와 형식을 최대한 느끼게 한 연출이 돋보인다.
성스루 뮤지컬 단점 덮는 함축적 가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대사가 거의 없는 '성스루(Sung-Though) 스타일'의 뮤지컬이다. 그만큼 노래가 극을 이끄는 큰 역할을 한다. 제임스 로버트 브라운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준다. 음악적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위트 있으면서도 메시지를 함축한 가사는 극적 갈등이 적은 성스루 뮤지컬의 단점을 훌륭하게 극복한다. 제이미의 넘버 '나의 여신'에선 사랑에 눈먼 상태를 표현하고, 캐시의 오디션 곡 '내게로 온다면'에선 긴장한 캐시의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는 생각들과 자책, 심사위원과 반주자를 향한 불만 등을 가사로 담아 웃음을 자아낸다.
이별로 시작하는 캐시의 첫 곡 '아직 아파'는 제이미의 이별 장면으로 끝나는 마지막 곡 '난 널 지킬 수 없었어’의 멜로디를 이용한다. 캐시의 이별로 시작해 제이미의 이별로 끝나는 작품 형식상 이런 음악 구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나, 같은 멜로디가 사랑의 정점인 결혼식 장면에서도 등장하는 것은 의외다. 상반되는 상황을 반어적으로 표현하는 가사, 첫 만남 장면에서 사랑에 빠지는 캐시가 부르는 노래 '안녕, 내일까지’의 제목처럼 이중적으로 들리는 표현들이 많다. 사랑에 이미 이별이 준비돼 있음을,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이 연결돼 있음을 드러내는 설정일까. 바꿔 생각하면 이별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안타까운 일만은 아니다. 만남에서 이별을, 이별에서 만남을 떠올리게 하는 캐시와 제이미의 사랑 이야기는 4월 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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