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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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위기를 인식하지 못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지난해 12월 직원들 앞에서 낭독한 반성문의 일부다. 플랫폼 시장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카카오의 '경영 리스크'를 오너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김 창업자는 살얼음판 위에 서 있다. 금융 범죄를 중점적으로 수사해 온 서울남부지검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카카오 관련 수사만 4건이다.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드라마 제작사 고가 인수 의혹, 카카오모빌리티의 콜 몰아주기 의혹, 가상화폐 클레이 횡령·배임 의혹. 주요 경영진의 업무상 횡령·배임 여부, 시장 질서를 흔드는 공격적인 경영 방식이 의혹의 큰 줄기다.
꼬리를 무는 의혹의 유·무죄를 가리기 전에 카카오 경영진이 신뢰를 잃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카카오 전·현직 직원에게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카카오의 경영진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꾸역꾸역 문제를 해결하는 직원들만 바보가 된 것 같아요. 더 황당한 건 큰 사고를 친 경영진도 잠잠해지면 좀비처럼 회사로 돌아와요. '김범수 브라더(brother)'들은 서로 통하니까 봐주거든요."
카카오 직원들의 박탈감엔 이유가 있다. 류영준 전 카카오페이 대표는 2021년 12월 카카오페이 상장 당시 경영진 7명과 함께 스톡옵션으로 받은 44만 주(약 900억 원)를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팔았다. '주식 먹튀(먹고 튀기)' 논란으로 역풍이 거세 류 전 대표가 자진사퇴했다. 하지만 카카오는 그를 비상근 고문으로 위촉했다. 류 전 대표는 1997년 김 창업자와 삼성SDS에서 만나 한게임 창업까지 함께한 '복심'이다. 남궁훈 전 카카오 대표도 지난해 물러나면서 스스로 내걸었던 약속을 어기고 스톡옵션을 행사해 94억 원을 챙겼다. 이후 상근 고문을 맡아 2억 원이 넘는 급여를 받았다. 그도 김 창업자와 한게임을 만든 동지다.
카카오의 '브라더 챙기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경영 실패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한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백상엽 전 대표도 자리에서 내려온 후 비상근 고문으로 옮겼다. 백 전 대표도 김 창업자의 서울대 산업공학과(86학번) 동기다. 이런 문제가 쌓이자 카카오 노조는 최근 외부기구인 '준법과신뢰위원회'에 경영진과 직원 간 징계 차별 문제를 시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본질적인 위기는 김 창업자의 '브라더 리더십'이 카카오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카카오의 미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데 있다. 카카오의 뿌리인 '카카오톡'은 이달 초 '국내 사용량 1위 모바일 플랫폼' 타이틀을 유튜브에 내줬다. 카카오의 영업이익도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뒤늦게 김 창업자가 '브라더 경영' 깨기에 나섰으나 아직 조직의 변화는 체감되지 않는다. 40대 여성인 정신아 카카오 대표 내정자에게 사령탑을 맡겼지만, 최고 경영진 한 명 바뀌었다고 해서 문제가 단숨에 해결될 리 없다. 채용과 교육, 승진과 보상까지 인사 제도 전반에 걸친 쇄신이 바탕이 돼야 한다. 카카오가 과감하게 외부 인사 영입을 늘리고 글로벌 기업 시스템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 창업자에겐 시간이 없다. 끓는 물의 온도가 내려가기를 기다리기보다, 과감하게 끓는 물속 개구리를 냄비 밖으로 꺼내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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