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조국이 뭘 잘못했느냐’는 팬덤층
표적수사라 해도 드러난 범죄 용인 안 돼
어렵게 건너온 ‘조국의 강’ 다시 빠질 텐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한 지인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그는 “조국이 도대체 뭘 잘못했느냐”고 했다. 포털 뉴스 댓글에서나 볼 법한 내용이었다. 꽤 균형 잡힌 시각을 가졌다고 믿었던 지인이었다. 조 전 장관은 억울한 피해자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팬덤층이 주변에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을 테다.
조 전 장관이 뭘 잘못했는지를 아는 데는 약간의 수고스러움만 있으면 된다. 최근 실형이 선고된 그의 항소심 판결을 보면 다 있다. 딸의 인턴증명서와 표창장 위조, 아들의 온라인 대리시험 등 입시비리 혐의는 대부분 유죄였다. 정치권 청탁에 따라 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의 감찰을 무마시킨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부부가 자녀의 허위경력을 만들고 정치권 청탁을 받고 권한을 남용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사과나 유감표명을 진지한 반성으로 보기 어렵다”고 매섭게 꾸짖었다.
검찰 수사가 정당했다는 건 아니다. 장관 청문회도 전에 후보자에 제기된 의혹에 대해 검찰이 전방위 압수수색에 나선 건 전무후무하다. 한 가정의 입시비리를 캐기 위해 20명이 넘는 검사가 투입됐고, 70여 차례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청문회 당일 기소된 부인 정경심씨의 공소장에는 공소사실을 특정하지조차 못했다. “털면 뭐라도 나온다”는 검찰 표적수사의 대표 사례로 역사에 꼭 남겨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범죄 혐의가 달라지진 않는다. 가벼운 혐의 한두 개가 얻어걸린 게 아니다. 공정이 주요 화두인 시대에 조 전 장관 일가가 저지른 입시비리, 그리고 공직자 감찰 무마는 먼지털기식 수사 결과라 해도 용인할 수 없는 중대 범죄다. 함정 취재라 해서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실이 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본인으로 인해 나라가 두 쪽으로 쪼개지며 진영 갈등의 골이 깊게 파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무한한 도덕적 책임을 느끼는 게 마땅하다. “윤석열 검찰 정권 탄생의 원인을 제공하신 분들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달라”는 임혁백 민주당 공관위원장의 주문은 민주당 친문 의원들이 아니라 조 전 장관에게 했어야 할 얘기였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은 “검찰 독재 조기 종식 불쏘시개가 되겠다”며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이제 조 전 장관에게 자성과 자중을 기대하는 건 의미 없어 보인다. 대법원 유죄 확정 시 의원직을 상실하는데 출마를 강행하는 게 도의가 아니라는 지적도 입이 아프다. 그게 통할 거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망스러운 건 그의 주변 인물들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함께 정치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신당을 창당하는 불가피성을 이해한다"며 힘을 실어줬다고 한다. 친문 의원 일부도 “반(反)윤석열 연합 전선이라는 큰 텐트가 쳐지면 조국 신당과 같이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한다. 어렵게 어렵게 ‘조국의 강’을 건너왔는데, 도로 그 강에 빠지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가 신당을 만드는 것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해도, 통합비례정당이든 과거 열린민주당 같은 자매 정당이든 한 텐트 아래 들이는 건 절대 못 한다고 왜 확실히 선을 긋지 못하는가.
문 전 대통령이 현직 시절 했던 "(조 전 장관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다"던 발언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를 "박절하지 못해서"라고 한 논란의 발언과 닮은 구석이 꽤 있다. 그들이 조 전 장관을 끌어안을수록 친명·친문 간 통합은 물론 중도진영 끌어안기도 멀어질 게 자명하다. 그 또한 박절하지 못한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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