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9일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4일간 이어진다. 21일부터 기온이 다시 떨어지며 아침저녁으론 눈이 뒤섞인 비가 내린다고 하니, 이 비는 봄비일까, 겨울비일까. 절기로 볼 때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우수(雨水)에 시작된 만큼 봄비라고 여길 만하다. 기상청 기준으로는 찬 시베리아 고기압에 밀려온 비구름에서 내린 비면 겨울비, 남서쪽에서 발생한 따뜻한 수증기를 머금은 구름이 몰려와 비를 내리면 봄비로 본다는 점에서도 봄비다.
□봄비와 겨울비는 절기나 기상청의 객관적 기준뿐 아니라 그 비를 바라보는 감성에서도 차이점이 있다.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고… 이별은 겨울비처럼 두 눈을 적시고”라는 가사로 유명한 가요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을 임현정이 2003년 발표한 이후 여러 가수가 따라 부르는 이유도 이 노래가 봄비와 겨울비의 차이를 잘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외롭고 춥고 축축한 현실은 비슷하지만, 봄비에는 겨울비에는 없는 어떤 따뜻함이 섞여 있다.
□2015년 개봉 영화 ‘내부자들’에 쓰인 이은하의 ‘봄비’도 따뜻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에서 깡패로 나오는 이병헌이 이 노래를 두 번 부른다. 비자금 담당자를 협박하기 직전에 처음, 권력자들 술판에 접대 여성을 태우고 가는 승합차 안에서 두 번째 흥얼거리는데, 음정 박자가 정확하고 부드러워 장면을 더 어둡게 만든다. 그런데 영화를 다시 보니 그 노래가 하기 싫은 나쁜 짓을 해야 하는 내적 갈등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읊조림처럼 들린다.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면 돌아왔네”라는 가사처럼.
□“태산이 가로막힌 건 천지간 조작이요/ 임 소식 가로막힌 건 인간 조작이로구나/ 우수 경칩에 대동강 풀리니/ 정든 임 말씀에, 요 내 속 풀리누나”라는 평안도 지역 민요는 우리 조상들도 우수 봄비를 ‘가로막히고, 꽁꽁 언’ 것들이 풀리는 따뜻한 희망의 소식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비록 4일간 이어진 우수 봄비가 종국에는 눈발로 바뀌더라도, 우리는 알고 있다. 봄이 머지않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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