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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탱크' 박지성의 약지 손가락과 유전자의 비밀

입력
2024.02.21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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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석
이환석한림대 의료·바이오융합연구원 R&D 기획실장·교수

편집자주

알아두면 쓸모 있을 유전자 이야기. 바이오산업의 새로운 혁신과 도약으로 머지않아 펼쳐질 미래 유전자 기반 헬스케어 전성시대를 앞서가기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 동향에 대한 소개와 관련 지식을 해설한다.


전 축구 국가대표 박지성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 3일(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8강전 이란과 일본의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현역시절 박지성은 뛰어난 심폐능력을 과시, 산소탱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알라이얀=뉴스1

전 축구 국가대표 박지성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 3일(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8강전 이란과 일본의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현역시절 박지성은 뛰어난 심폐능력을 과시, 산소탱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알라이얀=뉴스1


약지와 심폐능력의 상관관계
성호르몬 수용체 역할로 추정
막연한 상관관계 추정은 금물

최근 치러진 아시안컵에서 우리 국가대표 축구 선수들의 소위 탁구 게이트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래서일까. 유전자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축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논문 하나가 주목을 받는 듯하다. 최근 ‘인간 생물학 미국 저널’이라는 학술지에 실린 연구 결과다. 프로 축구 선수 중 약지(넷째 손가락·영어 약자로는 4D)가 검지(둘째 손가락·2D)보다 더 긴 사람의 심폐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는 내용이다. 프로 축구 선수 133명의 손을 정밀하게 스캔해 각각의 손가락 길이를 측정하고 신체 측정치를 분석한 결과, 약지가 검지보다 더 길면 장거리 달리기의 수행 능력이 더 높다는 점이 통계적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예컨대 뛰어난 심폐능력을 가진 박지성 선수의 경우라면, 일반인보다 약지의 검지 대비 상대 길이가 매우 길 것이라는 얘기다.

이 연구에서는 검지에 비해 약지의 길이가 긴 선수들은 산소 대사가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러닝머신에서 탈진할 때까지의 심폐 능력 검사에서 매우 높은 최대 산소소비량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기존의 다른 연구들에서 검지 길이와 약지 길이의 비율은 심장마비와 같은 심장병 발병이라든가 코로나19 감염 시 심혈관계 중증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결과들도 있으므로 그런 면에서는 일맥상통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픽이 들어갈 자리>

일반적으로 남성은 약지가 검지보다 긴 경우가 많으며, 여성은 검지와 약지의 길이가 같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흔히 약지가 검지보다 더 길면 남성성이 더 높다는 식으로 언급되곤 한다. 특히 태아가 임산부 자궁 속에 있을 때 대표적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 수치보다 상대적으로 높으면 약지가 검지보다 더 길게 된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도 있다.

테스토스테론이나 에스트로겐 같은 성 호르몬 수치가 높거나 낮을 때 열 손가락 모두 공평하게 길어진다거나 짧아지지 않고 왜 약지와 검지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걸까. 오징어는 8개의 다리 외에도 2개의 긴 촉수를 추가로 갖고 있다. 낙지나 문어도 8개의 다리가 각각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예를 본다면 우리의 손가락도 유전자 발현이라는 측면에서는 각자 특성이 다를 수 있을 텐데, 아마도 성 호르몬과 결합하는 수용체 유전자의 발현 정도가 검지와 약지에 달라서 생기는 현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약지와 검지의 길이에 관한 연구 결과는 이외에도 매우 다양한데, 그중에는 예술적 소양이라든가 소방수나 씨름 선수가 될 가능성 혹은 연예인에 열성적이거나 사이코패스가 될 가능성 또는 자판기에서 특정 음료를 선택하는 경향성 등과 관계가 있다는 결과가 보고돼 있으며 심지어 포커 게임에서 좋은 카드를 뽑을 행운과 관계있다는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남성과 여성에서 특히 오른손 손가락 사이의 길이 비율에 관한 차이는 분명한 편이지만 이와 관련된 상관관계들은 생물학적 근거가 있어 보이는 주제에서부터 그렇지 않은 주제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게 사실이다.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가 밝혀진 경우는 신빙성이 높겠지만, 단지 상관관계만을 측정해 얻은 결과라면 신중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는데, 이런 주의사항은 손가락 길이 연구에서만 아니라 모든 과학 분야 그리고 당연히 유전자 연구 분야에서도 필요하다.

관점이 다르다 보면 요르단 시합 전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정리하는 일부터 예상보다 쉽지 않을 것이며 그 전후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할 것이다. 하물며 이제 인간이 해석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유전자의 세계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일은 아직 걸음마 수준임을 인정하고, 더욱 유용하고 신빙성 높은 연구 성과들이 나와주기를 기대해 본다.

이환석 유전자 라이프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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