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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혼 상대,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다니"

입력
2024.02.26 04:30
수정
2024.02.27 14:23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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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교육 : <1> 재혼을 준비할 때 먼저 챙길 것은?

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기지만, 크고작은 고민도 적지 않은 시기다. 중년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전문가들이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재혼 전, 전혼(前婚) 확인 필수
정리 안 하면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잘 헤어진 뒤, 새 만남 이어가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47세 여성입니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뒤 수년간 혼자 어린 자녀들을 억척스레 키웠습니다. 아이들이 떠나간 아빠를 용납하지 않는 걸 보며 ‘다시는 남자를 믿지 않겠다’고 결심도 했죠. 그런데 직장 동료 이모(50)씨를 만난 뒤 얼음장 같던 마음이 녹기 시작했습니다. 비슷한 처지였던 점이 결정적이었죠. 이씨 역시 수년 전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됐고, 갖은 설득에도 아내가 마음을 돌리지 않아 결국 이혼을 준비 중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씨의 아내 신모씨로부터 소장(상간녀 손해배상)을 받게 됐습니다. 소장 제목엔 ‘상간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라고 적혀 있었고요. 상간녀. 수년 전 내게 그리 상처를 줬던 단어가 바로 그 단어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 ‘상간녀’로 취급받다니 정말 기가 막힙니다.

의뢰인 김모씨는 정말 법적으로 ‘상간녀’가 된 것일까? 더 나아가 이씨의 아내에게 위자료(상간녀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 걸까?

먼저, 소송을 제기한 신씨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남편(이씨)과 나의 혼인 관계는 아직 유지 중이다” “내 잘못이 있긴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엄연한 유부남이다” “그러므로 남편과 사랑에 빠진 김씨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상간녀이므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김씨는 억울할 수밖에. 김씨는 “이씨가 이혼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배우자와의 관계가 회복할 수 없이 파탄 난 상태고, 더욱이 그 책임이 신씨에게 있는 상황이다” “이씨가 ‘이혼을 준비 중’이라고 해서 만났던 것이지, 만약 둘의 부부 관계가 잘 유지됐다면 내가 왜 이씨를 만났겠는가?” “이씨와 신씨는 형식상 혼인 관계일 뿐, 사실상 파탄 상태였으므로 나는 ‘상간녀’가 아니며, 따라서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었을까? 바로 김씨였다. 재판부는 “비록 부부가 아직 이혼하지 아니하였지만 실질적으로 부부공동생활이 파탄되어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에 이르렀다면, 제3자가 부부의 일방과 성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이를 두고 부부공동생활을 침해하거나 유지를 방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없고 또한 그로 인하여 배우자의 부부공동생활에 관한 권리가 침해되는 손해가 생긴다고 할 수도 없으므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김씨는 승소했고, 이씨는 신씨와의 이혼 소송을 마무리한 후 김씨와 재결합해 ‘해피 엔딩’을 맞았다.

김씨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중년 여성 A(43)씨 역시 이혼 후 알게 된 B(50)씨와 진지하게 미래를 준비했고, 결혼 전 신혼여행도 미리 다녀왔다. 그렇게 결혼을 준비하던 어느 날 김씨 역시 소장(상간녀 손해배상)을 받았다. 알고보니 B씨는 유부남이었고, 그의 배우자가 둘의 관계를 알고 A씨에게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B씨는 이혼을 준비하던 중 부부 상담 등을 통해 아내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 회복됐고, 그렇다고 A씨도 놓지 못한 채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황당한 얘기였다.

A씨는 자신을 속인 B씨에게 소송(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법원은 A씨는 B씨의 적극적인 속임수에 넘어가 B를 만났고, B가 유부남인 걸 몰랐던 정황을 인정했다. 그러니 A씨에게는 혼인 파탄의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모르긴 모르되, B씨의 아내가 A씨에게 제기한 소송에서도 A씨는 승소했을 것이다. 다만, A씨가 소송에선 승소했을지라도, 새로운 만남의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연도별 재혼 건수.

연도별 재혼 건수.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재혼한 부부가 4만 2,627건이며, 재혼 당시 평균 나이는 남성 51세, 여성 46.8세다. 40~50대 중년들이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김씨나 A씨처럼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다.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합니다“라고. 이혼 후 만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피치 못한 상황에 따라 전혼(前婚)의 이혼 절차가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적어도 전혼에 대해 이혼 소송을 제기한 후 새 만남을 고려하길 바란다.

사랑은 서로에 대한 진실함과 책임이 수반된다. 이혼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전혼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반대로 이혼한 사람과의 만남을 고민 중이라면 상대방이 전혼을 잘 마무리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법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말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절차는 아니지만, 새로운 만남을 위한 성숙하고 안전한 시작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아픔을 딛고 다시 용기를 내는 중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과거의 아픔이 미래 행복을 발목 잡아선 안됩니다. 과거가 힘들었던 만큼 더 신중하게 결정하고, 결정했다면 조금 냉정하더라도 꼼꼼한 절차를 거쳐서 건강하고 성숙한 가정을 이뤄가길 바랍니다."



김승혜 법무법인 에셀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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