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고수'를 찾아서
우리동생동물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반려견 ‘도담이’(12세 추정∙푸들)에 대해 묻자 김희진 원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병원 진료 때에도 딱히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고 침착하던 도담이였기에 각종 검사가 한층 더 수월했다고 합니다.
사실 겉으로만 보면 도담이가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는지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도담이가 앓고 있는 질병은 부신피질기능항진증(쿠싱 증후군)이기 때문입니다. 김 원장은 “쿠싱 증후군은 간을 계속 일하게 해 간이 비대해지는 증상을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신체 부위보다 유독 배가 불러서 ‘올챙이배’라고 불리는 증상이 나타나는 원인이죠. 마치 스테로이드 약물을 고용량 투여한 것 같은 효과와 비슷하다고 하네요.
흔히 쿠싱 증후군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증상은 ‘다음, 다뇨’입니다. 그런데, 이 증상과 유사한 질병이 ‘당뇨’입니다. 그래서 보호자들은 두 질병을 잘 구분하기 어려워하곤 하는데요. 그런데 도담이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쿠싱을 진단받았다고 합니다.
쿠싱을 빠르게 진단받은 비결은 바로 ‘꾸준한 건강검진’이었습니다. 김 원장은 “쿠싱 증후군과 당뇨의 근본적 차이점은 바로 간 수치”라고 말했습니다. 당뇨는 혈당은 높아지지만, 간 수치가 높아지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동안 도담이는 정기적인 건강검진 과정에서 혈당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22년 10월, 도담이의 이빨 스케일링을 앞두고 실시한 혈액검사에서 간 수치가 높게 나온 겁니다. 김 원장은 “당시 간 수치가 ALT 11,800 정도로 매우 높았다”며 “스케일링을 미루고 3개월 뒤 다시 검사를 해보니 2,000까지 수치가 올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결국 도담이의 상태가 쿠싱 증후군으로 확진되자 보호자 김현희 씨는 “우리 가족이 되기 전에도 도담이는 힘든 삶을 살아왔었다”며 “관리를 하면 괜찮아진다지만, 만성 질병을 앓는다고 하니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애니멀 호더’와 살던 유기견, 간신히 가족 만났지만..
도담이는 경기도의 한 사설 보호소에서 지내다 2016년, 지금의 가족을 만났습니다. 이 보호소는 중성화 수술을 거부하고 개체 수가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걸 방치해 보호소라기보다 ‘애니멀 호더’에 가깝다는 지적을 받던 곳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관리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보호소였던 만큼, 도담이 역시 건강 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처참하다’말고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어요. 몸 절반은 털이 빠질 정도로 피부가 좋지 못했고, 이빨에는 치석이 잔뜩 끼어 있었죠. 뒷다리 근육이 좋지 못해 오래 걷지도 못했어요.
도대체 누가 도담이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현희 씨는 계속 궁금증을 품었습니다. 그러던 중 도담이의 몸에서 발견된 내장형 마이크로칩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초 등록지(인천 서구)를 제외하고는 도담이의 과거를 되짚어볼 방법은 없었습니다.
결국 알 길 없는 과거를 뒤로하고 현희 씨는 도담이의 지금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로 결심했습니다. 빠진 털은 연고를 발라주고, 뒷다리는 마사지를 해주면서 조금이라도 더 근육을 키워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치석 역시 꾸준히 동물병원을 찾아 스케일링을 하면서 제거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도담이에게 생긴 마음의 상처였습니다. 평상시 도담이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현희 씨 가족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면서도 적응을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그러나 현희 씨는 “잘 때 건드리거나 도담이가 싫어할 때 몸을 잡으면 물면서 의사를 표현했다”며 “특히 술을 마시고 난 뒤에 만지려고 하면 그런 행동이 보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예전 주인에게 학대를 당하지 않았을까, 수많은 개들 사이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잔 것은 아닐까..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아무리 과거를 되짚어봐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결국 ‘우리가 도담이에게 맞춰야 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물론, 가족들만 일방적으로 도담이에게 맞춰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담이도 새 집에 적응하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현희 씨는 “처음 도담이가 집에 왔을 때 배변을 잘 가리지 못했었다”며 “화장실 자리 근처에 배변패드를 깔아주고 조금씩 도담이의 행동을 유도하자 곧잘 해냈다”고 말했습니다.
기가 막히게 약 피하는 댕댕이.. 집사의 묘책은?
가정생활에 잘 적응하는 도담이도, 고치지 못한 게 있었습니다. 바로 강한 식탐이었습니다. 애니멀 호더의 보호소에서 지낸 만큼, 먹이가 충분하지 않아 식탐을 강하게 보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쓰러워 보이는 만큼 처음에는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으라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쿠싱 진단을 받은 뒤였습니다. 김 원장은 “쿠싱 증후군 합병증 중에는 미네랄 성분이 반려견의 몸에 침착되는 증상이 있다”며 “이 미네랄이 결석처럼 단단해져 신장에 쌓이면 혈류를 방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간 수치를 조절해야 하는 만큼 그에 맞는 식사 관리도 필요해졌습니다.
더군다나 약을 제때 잘 먹어야 하는데, 도담이의 명석함이 이번에는 방해가 됐습니다. 보통 도담이의 식사에 약을 섞어주는데, 처음에는 같이 잘 먹더니, 어느 순간부터 약만 골라내서 뱉어내기 시작한 겁니다. 김 원장은 “보통 약을 먹일 때 캡슐째 먹이는 걸 힘들어하는 보호자들이 많다”며 꼭 도담이 가족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현희 씨는 고민하다가 묘안을 떠올렸습니다. 먹을 것에 관심이 많은 도담이의 성격을 이용하기로 한 겁니다. 그는 “고구마와 단호박을 삶아 경단처럼 만든 다음 그 안에 약을 넣었다”며 “강아지에게 급여하는 저염 치즈에 알약을 싸서 먹인 적도 있다”고 자신의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사료에만 약을 섞다 보면 금방 약을 알아차리는 만큼 먹거리를 다양하게 해 도담이의 눈을 속인 겁니다.
물론, 이 방법을 위해 희생한 것도 있습니다. 바로 식사량을 더 줄이는 겁니다. 간식량을 늘리는 만큼 기본 식사량도 줄여야 체중 조절과 약효를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대신, 도담이가 원하는 시간에는 꼭 맞춰서 먹을 것을 준비해 준다고 합니다. 그것이 새벽 5시여도 현희 씨는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도담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쿠싱 증후군 처음 진단받았을 때 원장님께서 '이 정도 간 수치였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을 정도였어요. 그러니 마음이 더욱 안 좋았죠. 그런데도 도담이가 잘 살아준 걸 생각해 보면, ‘우리 때문에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서 도담이에게 더 잘 해주고 싶어요. 그동안 너무 고생이 많았잖아요. 우리와 함께 7년을 있었고,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행복했었다는 걸 도담이 기억에 남겨주고 싶거든요. 그러고 도담이 가고 싶을 때 편하게 떠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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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에 분포하는 단백질 효소, 간이 손상될수록 혈액에 더 많이 포함된다. 반려견의 정상 범위는 40~130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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