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러 2008∼2014년 기밀 문건 입수"
'핵 공격 보복 때 사용' 공개 기준 이외
재래식 공격에 전술핵 사용 교리 마련
러시아군이 주요 강대국과의 충돌 시 초기 단계부터 전술 핵무기를 쓰는 방안을 수년째 연습해 온 사실을 보여 주는 내부 기밀 문건의 존재가 드러났다. '제3국으로부터 선제 핵 공격을 받을 경우 보복' 등으로 한정된다고 공언해 온 것과 달리, 전술핵 사용 문턱을 대폭 낮췄다는 얘기다. 3년째로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러시아가 우방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하고 있는 데다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우크라이나 파병설'까지 불거진 터라 핵위험 및 군사적 긴장이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10년 전 문서 29건... 현재 러군 교리와도 연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현지시간) "2008∼2014년 작성된 러시아군 기밀 문건 29건을 서방 소식통을 통해 입수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해당 문건에는 적군의 러시아 영토 상륙, 국경 지역 담당 부대의 전투 패배, 재래식 무기를 사용한 적의 공격 임박 등의 상황에서 러시아군이 핵 반격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 △러시아 전략핵잠수함(SSBN) 20% 손실 △핵추진잠수함 20% 손실 △순양함 3척 이상 손실 △비행장 3곳 이상 파괴 △해안 지휘본부에 대한 동시다발적 공격 등 잠재적 전술핵 사용 기준으로 열거됐다. 이에 더해 적대국의 침략 억제 또는 공격 중단이 필요할 때, 러시아군의 전투 패배나 영토 상실을 방지해야 할 때 등 '광범위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도 핵무기를 쓸 수 있도록 기준을 폭넓게 규정했다.
FT는 "문건 작성 시점은 10년도 더 지났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러시아군 교리와도 여전히 관련성이 있다'고 평가한다"고 짚었다.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의 알렉산드르 가부예프 국장은 "이런 문서가 공개적으로 보도된 건 처음"이라며 "(러시아가) 전통적 방식으로 원하는 결과를 달성할 수 없을 때 핵무기 사용의 문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알려 준다"고 말했다.
지난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술핵 사용 기준에 대해 '핵 공격에 대한 보복' '재래식 전쟁이라 해도 국가 존망이 위태로울 때' 등으로만 제한된다고 밝혔다. 신문은 "푸틴 대통령은 당시 두 가지 모두 현실화할 것 같지 않다며 '핵 사용 기준'을 낮추라는 강경파의 요구를 일축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해당 문건 내용이 사실이라면, 러시아군은 대외적 입장과는 정반대로 핵을 이용한 전쟁 연습을 해 온 게 된다. 미국은 러시아가 최소 2,000기의 전술핵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6월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핵전력이 나토를 압도한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중국에 대한 모스크바의 깊은 의심 보여 줘"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한 문서에 담겨 있는 '중국의 러시아 침공'을 가정한 핵 방어 시나리오다. 중국군이 극동에서 공격을 개시하면 곧장 전술핵을 써서 후속 부대의 진군을 막아내겠다는 계획이다. 실제 러시아군은 지난해 11월 중국 접경 지역에서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이스칸데르 미사일 발사 훈련도 했다.
물론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현재 굳건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은 문서에 대해 "사실관계가 의심스럽다"고 반박했다. 중국 외교부도 "러시아를 의심할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FT는 "이러한 러시아군의 방어 계획은 모스크바의 안보 엘리트들 사이에 깊이 자리 잡은 중국에 대한 의심을 드러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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