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아버지는 주 40시간 이상 근로를 하셨고, 1년 치 평균으로 따지면 임금은 월 80만 원 정도 될 거예요.” 지난해 택시기사 고 방영환씨가 분신해 사망한 후, 딸 희원씨가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100만 원, 50만 원을 받거나 아예 못 받는 달도 있었다. 완전월급제 이행과 임금체불 해결을 외쳤던 방씨는 사망 후 144일 만인 지난달 27일에야 발인했다.
□ 해성운수가 방씨에게 제시한 근로계약서 내용은 이랬다. ‘2020년부터 사납금 대신 ‘월 성과급여 산정을 위한 운송수입금’(기준운송수입금)을 도입하고, 그 금액을 월 452만4,000원으로 함. 미달하는 금액을 불성실 근로로 간주하고, (중략) 미달분에 대해서는 해당 택시기사가 책임지고 납입하도록 함.’ 여객자동차법 개정으로 2020년부터 사납금이 금지되고 수익금 전액을 납부한 뒤 임금으로 받는 전액관리제가 도입됐으나, 이름만 바꿔 사납금을 유지한 것이다. 방씨가 계약내용을 거부하자 사측은 과거 계약서에 따라 하루 3시간 30분 근로만 인정했다.
□ 방씨의 분신 이후, 서울시는 기본급을 보장하지 않는 서울 시내 법인택시 회사 21곳을 적발했다. 택시기사가 월 450만 원 안팎의 기준금을 벌지 못하면, 기준금에 미달하는 만큼을 기본급(월 200만~210만 원가량)에서 차감했다. 한 달에 400만 원밖에 벌지 못한 택시기사는 기본급에서 50만 원을 공제하고 150만 원 정도만 받은 것이다. 서울시는 회사 소명을 듣고 과태료 처분을 결정할 예정이며, 233개 법인택시 회사에 대한 전수조사에도 들어간다.
□ 방씨는 지난해 2월 임금체불을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에 진정하지만 무혐의가 나왔다. 이후 다시 고소했고 그의 사망 후에야 기소의견이 나왔다.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방씨를 폭행·협박했던 해성운수 대표는 구속됐다. 방씨는 생전 부당함에 노조를 만들고 장기간 1인 시위를 하고 정부·경찰·지자체의 문을 두드렸는데, 왜 목숨을 끊어서야 문제가 해결될까. 억대 연봉이 즐비한 시대, 무관심 속에 죽어간 저임금 택시기사에게 모두 마음의 빚을 졌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