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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확행'과 '입틀막'

입력
2024.03.04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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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에 올라온 '윤석열 대통령 양심고백 연설'이라는 제목의 짜깁기 영상들. 지난해 11월 최초 게시 후 여러 버전으로 재생산되며 확산했다. 틱톡 화면 캡처

틱톡에 올라온 '윤석열 대통령 양심고백 연설'이라는 제목의 짜깁기 영상들. 지난해 11월 최초 게시 후 여러 버전으로 재생산되며 확산했다. 틱톡 화면 캡처

'숏확행'이라는 말이 있다. '짧지만(Short)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으로, 쇼트폼(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이 인기를 얻으면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숏확행을 추구하기 딱 좋은 플랫폼이 틱톡이다. 틱톡에선 요즘 유행하는 댄스 챌린지부터 스포츠, 연예, 교육, 요리, 뉴스 등 다양한 분야의 쇼트폼이 쉴 새 없이 생산, 공유된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쇼트폼을 보며 키득거리다 보면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 흡인력이 오죽 강했으면 '쇼트폼 중독'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틱톡에는 정치 관련 쇼트폼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최신 뉴스나 해설 등 진지한 영상과 함께 유명 정치인을 풍자하거나 조롱하고 비꼬는 영상도 숱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달 23일 접속 차단을 의결한 '윤석열 대통령 양심고백 연설' 영상도 지난해 11월 틱톡에 최초 게시됐다. "저 윤석열, 국민을 괴롭히는 법을 집행해 온 사람입니다"로 시작해 "저 윤석열의 사전에 정치보복은 있어도 민생은 없습니다"로 마무리되는 이 영상은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연설 장면을 의도적으로 짜깁기한 조작 영상이다. 방심위는 영상 차단 이유로 '실제 대통령 발언으로 오인해 현저한 사회 혼란을 야기할 우려'를 들었다.

문제의 영상은 출처를 명시하지 않아 도용이 의심되고 의도적인 왜곡과 조롱으로 명예훼손 소지도 있어 보이지만, 방심위의 우려대로 실제 대통령 발언으로 오인할 만큼 정교하지는 못하다. 연설 내용부터 전혀 상식적이지 않고, 장면과 장면을 이어 붙인 지점 곳곳에서 튀는 현상이 나타나는 등 편집 수준도 조악하다. 현저한 사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판단도, 영상이 게시된 지 3개월이 지나도록 '혼란'이라고 할 만한 상황이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그런데도 경찰은 게시자 특정을 위해 압수수색을 집행하는 등 강제수사에 나섰고, 대통령실도 '이와 같은 허위 조작 영상에 대해 강력 대응할 방침'임을 밝혔다.

윤 대통령의 2024년 신년사 장면을 짜깁기한 조작 영상(왼쪽 사진)과 김건희 여사의 과거 대국민 기자회견 장면을 왜곡해 만든 짜깁기 영상. 틱톡 화면 캡처

윤 대통령의 2024년 신년사 장면을 짜깁기한 조작 영상(왼쪽 사진)과 김건희 여사의 과거 대국민 기자회견 장면을 왜곡해 만든 짜깁기 영상. 틱톡 화면 캡처


문재인 전 대통령(왼쪽 사진)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얼굴을 다른 사람의 몸에 합성한 조작 영상. 틱톡 화면 캡처

문재인 전 대통령(왼쪽 사진)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얼굴을 다른 사람의 몸에 합성한 조작 영상. 틱톡 화면 캡처

그런데 이와 비슷한 페이크 영상은 틱톡에선 차고 넘친다. 예컨대 윤 대통령의 2024년 신년사 영상 일부를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왜곡 편집한 영상의 경우 조회수 13만 회, 좋아요 2,000개를 넘어서며 계속 확산하고 있다. "남편이 잘못이 있었습니다"로 시작해 "ㅋㅋㅋㅋㅋㅋ"로 마무리되는 김건희 여사의 기자회견 짜깁기 영상도 수개월 째 공유 중이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얼굴을 다른 사람 몸에 합성하고 발언의 일부를 잘라 붙인 영상도 볼 수 있다.

물론 총선을 앞두고 허위 정보, 딥페이크에 대한 경계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겠지만, 대다수 이용자들은 피식 웃고 지나칠 숏확행 영상에 국가 권력이 정색하고 통제를 가하는 상황은 당황스럽다. 경호원들이 카이스트 졸업생의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끌어내던 장면과도 왠지 겹치는 느낌이다. 이른바 '입틀막' 사태 직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10여 년 전 연설이 소환된 것은 권력의 포용력에 대한 국민적 갈망의 표출이다. 윤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풍자는 권리'라고 말한 것을 국민들은 기억한다. 반대 의견을 지닌 국민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차분히 이해시켜 나가는 여유와 포용이 더 절실한 때다.


박서강 기획영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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