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편집자주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반려동물부터 지구의 생물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소개한다.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책장 가득한 책과 수집한 것들을 옮기는 것은 이사 때마다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삿짐센터에 맡기면 될 일이지만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것들인지라 잘 정리해 미리 포장해 둬야만 안심이 된다. 소용이 적어졌거나 싫증 난 것을 버리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꽃 사진 슬라이드들을 버리기로 했다. 대학 때부터 전국의 산야를 다니며 담아 온 것들인데 10년 넘게 쓰임새가 없어 이번 기회에 정리를 결심한 것이다. 필름 마운트를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버리기 위해 필름을 제거하며 라이트 박스에 비춰본 사진에서 당시의 추억이 먹먹하게 떠오르기도 했지만 미련 없이 버리기로 했다.
언젠가 다시 쓰일지 몰라 수납장에 간직하던 카메라는 고무코팅이 삭아 찐득거리고, 비싸게 장만한 렌즈들도 언제 꺼내 보았는지 기억이 오래다. 카메라 사진을 찍지 않은 지는 제법 지났지만 꽃을 공부하고 완상하는 것을 포기한 적은 없다. 스마트폰 사진으로도 충분히 만족한 이유도 있지만 카메라 사진을 중단한 데에는 또 다른 연유가 있다.
10년 전쯤이었을까? 이른 봄 노루귀와 복수초, 바람꽃이 많이 피는 강원도 선자령으로 동호회 단체 출사를 갔을 때 일이다. 산 중턱 눈밭에 핀 복수초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 회원들을 큰 소리로 만류하느라 당일 분위기를 사달 낸 적이 있다. 사진 찍기 좋은 위치를 잡는 이들 때문에 미처 피지 못한 주변의 많은 봄꽃 새싹들이 무수히 밟혀 있었고, 산행 내내 같은 짓을 반복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전 갈퀴현호색과 제비동자꽃 자생지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터라 더 화를 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들 중 한 명이었던 나 스스로 반성했고, 그 이후로 꽃을 찍기 위해 등산로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간 기억은 없다.
이른 봄, 숲속 나무 아래에 핀 풀꽃들은 대부분 전년도에 영양분을 모아 만든 땅속 겨울눈에서 올라온 것이다. 위쪽 나무에 잎이 피어 햇빛을 가리기 전 짧은 기간 동안 꽃을 피워야 하므로 대개 꽃줄기가 짧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낮춰야 볼 수 있는 종들이 많아 봄꽃을 보러 숲속에 들어가는 것은 수많은 풀꽃의 싹을 자신도 모르게 밟게 되는 일이 될 수 있다. 굳이 봄꽃을 보기 위해서라면 잘 조성된 식물원이나 봄꽃 탐방로를 갖춘 둘레길을 찾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숲속이 아니라도 봄의 전령 풀꽃들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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