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대사로 임명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두 달 전 출국금지된 것으로 드러났다. 출금된 피의자를 해외 공관장에 임명한 부적절한 인사도 문제지만, 그가 호주 정부의 아그레망(동의)까지 받은 상태여서 외교와 수사의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소환조사도 없이 출금을 해제한다면 향후 실질적 조사가 어려운 만큼 신속한 수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
외교부는 4일 ‘채 상병 사건’ 수사 무마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받는 이 전 장관을 주호주대사로 임명했다. 채 상병 의혹과 관련해 장관에서 물러난 지 5개월 만이다. 김장수 전 장관의 주중 대사 임명처럼 전례가 없지 않으나 전임 국방부 장관의 공관장 발탁은 흔치 않다. 호주와의 국방, 방산 협력 강화를 위한 인사라는 해석도 무리는 아니나, 문제는 그가 더불어민주당의 고발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대상이며 출금까지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 전 장관은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결과를 보고 받고 최종 결재한 뒤, 갑자기 입장을 바꿔 사건의 경찰이첩 보류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실 지시를 받았다는 간접 증언들이 나올 정도로 그는 사건의 핵심이다. 공수처는 앞서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수사기법상 그 ‘윗선’인 이 전 장관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소환조사가 필요한데, 이번 인사로 난감한 상황이 됐다. 공수처 관계자는 ”수사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 조치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야당은 “피의자를 해외로 도피시키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는데, 이런 지적이 아니라도 국방의무를 다하다 숨진 병사와 관련된 진실 규명보다 대사 임명이 더 급하다고 할 순 없다. 사건 연루 의혹을 받아 함께 출국금지된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이 이번 총선의 여당 단수공천을 받은 것도 공교롭다. 진실을 밝히려던 수사단장만 재판을 받고 있는 현실은 누가 봐도 어처구니없다.
이 전 장관은 ‘외압’ 실체를 숨기기 위한 발령이 아니라면, 향후 수사 일정에 적극 임해 이를 증명해야 한다. 대사 부임을 빌미로 시간 끌기나 소환 불응을 보인다면 ‘방탄 임명’을 자인하는 것이 된다. 공수처 또한 의혹이 남지 않도록 더 엄정하게 수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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