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리 국민을 간첩 혐의로 붙잡아 수개월째 구금 중인 사실이 드러났다. 외교부와 러시아 매체에 따르면 한국인 백모씨가 올해 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체포된 뒤 지난달 말 모스크바로 이송돼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갇혀 있다. FSB는 백씨가 러시아 기밀을 외국에 넘긴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백씨는 탈북민 또는 북한 벌목공과 근로자를 인도적 차원에서 도우며 선교 활동을 해왔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러시아는 백씨의 인권과 재판권을 보장하고, 외교부는 백씨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외교력과 소통 채널을 총동원하는 게 시급하다.
이번 사건은 한국인이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게 처음인 데다, 한러 관계가 삐걱대고 북러 밀착이 가속화하는 때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후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다. 지난달 초에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노골적으로 편향됐다”고 저격했다. 일국 정상의 발언을 다른 나라 외교관이 비난한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결례다. 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러시아를 방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북한산 포탄과 탄도미사일이 러시아로 넘어가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일각에선 러시아가 정치외교적 목적을 위해 탈북민을 지원해 온 한국인 선교사를 체포한 것 아니냔 시각도 나온다. 사실상 인질로 삼아 한국 압박용으로 쓸 것이란 분석이다. 이러한 의혹을 불식시키는 건 러시아의 몫이다.
외교부는 “체포 사실을 인지한 직후부터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달 초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부 차관이 방한했을 때 백씨 구금은 안건에도 없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다른 나라에 장기간 구금돼 있는데도 외교부가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도 러시아에 항의조차 안 했다면 직무유기이다. 백씨 사건을 하루속히 원만하게 풀고 한러 관계가 더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외교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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