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에 맞지 않은 권력 행사
비판엔 궁색한 논리로 정당화
정치 윤리 퇴행을 조장해서야
정치지도자들은 대개 추진력에 현혹되고, 잘못 인정엔 인색하기 마련이지만 최근 정치 상황을 보면 정도가 심하다. 걸핏하면 “뭐가 문제냐”는 식의 반응이지만 논리가 궁색하다. 보통 사람의 눈, 상식과 적지 않은 괴리가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기 합리화에 빠진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운 정당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부터 수도권 일대를 돌며 부처 업무보고를 겸한 민생토론회를 갖자 총선용 논란이 불거졌다. 대통령은 연중으로 전국 순회 토론회를 갖겠다며 선거를 목전에 두고 부산, 경남, 대구, 경북, 충청을 찍고 호남까지 돌았다. 민생에 여야가 어디 있고, 진영이 어디 있냐는 논리에 정치일정과 무관하다는 반박으로 일시중단 요구 등의 비판을 일축했다. 엄정한 선거관리 또한 대통령의 중요 책무가 아닐 수 없는데도 이는 아예 무시다. 선거용 시비가 일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는 말과 달리 20차례 민생토론회에서 밝힌 투자, 지원 금액만 1,000조 원에 육박한다. 상당액이 대기업 투자금액이라는데 대통령의 지역현안사업 홍보에 기업을 끌어들인 셈 아닌가. 이런 마당에 누가 되든 다음 정권이 선거의 정도를 지키길 바랄 수 있겠는가. 이전 정권도 그러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여론 눈치라도 살폈고, 대통령이 선거 국면에 전국을 돌며 지역현안사업을 대놓고 홍보하지 않았다. 퇴행의 선거행정이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호주 한국대사 임명의 정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 대사는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수사대상자다. 대통령실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늑장 수사와 출국금지 연장 탓을 하지만 사안의 본질적인 면이 아니다. 이 대사의 범죄 혐의와 관련해 기소 여부를 예단할 수 없지만, 해병대 수사단이 해병 1사단장 등 8명에 대한 과실치사 혐의와 관련한 경찰 이첩 보류 지시의 당사자이고, 석연치 않은 번복 과정엔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얽힌 마당이다. 정상적인 인사 시스템이라면 걸러졌어야 했다. 공수처의 수사 결론을 보고 난 뒤에 자리를 마련해 줘도 줬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공수처에 책임을 미루는 변명으로 인사를 합리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도피성 임명이라는 야당 공세에 빌미를 제공한 터이지만, 정략으로 모는 건 권력의 오만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디 대통령만인가. 제1야당 지도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자기기만 또한 눈 뜨고 봐주기 어려울 정도다. 국회의원 공천이란 게 일정한 물갈이가 불가피하나 노골적인 자기편 챙기기는 근자에 보기 드물다. 원칙이 무너진 불공정 공천 방식이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로 회자되는데도 이 대표가 시스템 공천이라고 강변하는 건 코미디다. 권력자의 입김이 없을 수 없는 여당도 아니고, 야당 처지에서 총선 악영향을 아랑곳하지 않는 자세는 누가 봐도 이해 불가다. ‘이재명 사당화’와 거기에 줄 선 이들과 팬덤들은 ‘공천 혁명’이라 거들고 있으니 국민인식과 괴리된 이런 집단 세뇌도 찾아보기 어렵다. 선거운동에 들어가면 불공정 시비는 잊힐 거라고 생각한다면 유권자를 쉽게 보는 일이다.
국민이 정치권력에 대해 대단한 윤리와 도덕성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상식 수준의 규범과 기준에서 권력 행사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건 무리한 일도 아니다. 권력의 오남용과 그걸 덮기 위한 자기기만과 합리화는 보기에 낯 뜨겁다. 내리막을 타기 시작하면 다시 끌어올리기 어려운 게 정치 윤리라고 한다. 거의 미끄럼틀을 타는 듯한 정치 윤리의 타락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기 마련이다. 정치 리더들이 이를 조장하는 현 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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