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보다 '적' 인식의 비상계엄
진지전까지 꿈꾸는 尹의 후안무치
완장 채워줘선 안 될 인물이었다
12·3 비상계엄을 주도했던 김용현 전 국방장관은 계엄 해제 직후 국방부 관계자 등에게 “중과부적이었다, 수고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적은 수로 많은 적을 대적하지 못한다는 사자성어라 ‘그 적이 야당 아니냐’는 뒷말을 낳았다. 검찰 소환 후엔 구치소에서 자해 시도를 실패한 뒤 돌변해, 변호인을 통해 계엄 정당성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장성 출신이라 입에 붙은 말일 수 있지만 고위 공직자 입에서 나온 ‘적’ 개념이 처음은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 야당인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대통령에 오른 1998년 3월 대선과 맞물린 북풍조작사건 주역인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검찰 조사 도중 할복을 기도했다. 병원 입원 중 그는 변호사에게 “패장으로서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이 길밖에 더 있겠느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북풍조작사건은 김대중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한 안기부 공작으로 결론이 나 실형을 선고받았다. 올챙이 기자 시절, 민주화 시대에 공직자 입에서 나온 그 말이 황당해 ‘패장이라니’라는 기자 칼럼을 썼었다.
비상계엄은 경쟁자가 아닌 '적' 인식의 극단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악화할 대로 악화한 여야 대결정치의 산물로만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에 미친 악영향이 크다. 정부 관료에 대한 탄핵소추 남발과 초유의 예산삭감을 예로 들었으니 반국가세력 척결 대상은 곧 더불어민주당이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에 6시간 계엄으로 끝났기에 망정이지 문민 독재를 꿈꾼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민주주의 뒷걸음질이 얼마나 진행됐을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찔하다. 단순히 계엄 해제 결의 방해를 목적으로 한 국회 봉쇄나 의원 체포, 구금 등 의회 권능을 불가능하게 하는 정도를 넘어 전복까지 꿈꿨던 정황이다. 김용현 기소 내용을 보면 구체적 설명은 없으나, 검찰은 국회 무력화 후 비상 입법기구 창설 의도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전두환이 1980년 10월 설치했던 국가보위입법회의 같은 조직이다. 결국 야당의 멸절 아닌가 싶다. 우리 민주주의 쟁취 역사로 볼 때 이러한 시도는 필히 빚어졌을 전국적 소요와 유혈사태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그 기간이 얼마가 됐든 폭압과 저항 속에 나라는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했을 터이다.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내란죄 구성요건을 충족하고도 남을 일이지만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고 강변한다. 윤 대통령 스스로 거대 야당 폭주를 제어하는 데 실패했다고 아쉬워할지 모르나, 기자 개인적으로 70년 동안 쌓아 올린 금자탑에 오물을 한껏 뿌린 사건으로 본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국제행사마다 피식민지배국 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로 대한민국을 선전해왔다. 사실 이런 토대 위에서 한류 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고, 한국인은 어디서든 대접받을 수 있었다.
민주주의 위기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지만 오물을 걷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계엄 실패 후 퇴진 압력을 받아온 윤 대통령은 국회 탄핵 후 ‘반국가세력’ 준동을 내세워 극성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한 ‘진지전’을 꿈꾸는 모양이다. ‘법꾸라지’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법률 규정을 동원해 버티는 걸 보면 앉아서 당하진 않겠다는 자세다. 한남동 관저를 지키는 지지자들에게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한 편지만 봐도 그렇다. 왜곡된 가치와 생각, 그리고 과한 권한으로 나라를 큰 위기에 빠뜨리고도 개인의 안위만 보는 후안무치다. 그가 줄곧 소리 높였던 자유민주주의 덕성은 물론 '패장은 말이 없다'는 패군지장의 품성조차 갖추지 못했다. 완장을 채워줘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차기 대선에선 국민이 비상한 경각심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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