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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일론 머스크가 세운 항공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초대형 우주선 ‘스타십’(Starship)이 지구 궤도를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화성 이주 등 지구 밖 행성에서도 살 수 있는 인류(다행성 종족)를 향한 대장정의 이정표다. 이러한 역사적 우주 유영을 전 세계인이 생중계로 볼 수 있었던 건 저궤도 위성망 ‘스타링크’(Starlink) 덕분이다. 기존 위성통신의 경우 고도 3만6,000㎞에 정지위성을 올려야 해 비용도 많이 들고 속도도 느렸다. 스타링크는 지구 저궤도(고도 300~1,500㎞)에서 6,000개 안팎의 위성으로 촘촘하게 네트워크를 구축, 이를 극복했다. 우주 인터넷은 물론 바다 한가운데나 산간벽지에서도 통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저궤도 위성의 군사적 위력을 보여줬다. 우크라이나는 통신망 공격을 받아 군 지휘 체계가 마비되자 머스크에게 스타링크 서비스를 요청했다. 머스크가 이에 응하고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효과를 거두며 당초 속전속결이 예상됐던 전쟁은 장기전으로 바뀌었다. 다만 머스크는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의 러시아 해군을 공격하는 건 돕지 않았다. 이제 전쟁의 판도도 저궤도 위성망이 좌우하고 있다.
□ 스페이스X가 2021년 미국 정보기관 국가정찰국(NRO)과 18억 달러(약 2조4,000억 원)의 ‘스타실드’(Starshield) 사업에 대한 비밀 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보도됐다. 스타링크가 민간용이라면 스타실드는 군사용이다. 미군을 위한 별도 정찰용(스파이) 저궤도 위성 네트워크를 구축, 전 세계 모든 곳을 살피고 잠재적 위험에 대응하겠다는 이야기다. 스타실드는 이미지센서를 갖춘 대형 위성과 수많은 중계 위성으로 구성되고, 위성 간 레이저 통신을 사용한다. 아무도 숨을 수 없는 세상이 됐다.
□ 영국은 원웹, 중국은 궈왕, 러시아는 스피어란 이름으로 저궤도 위성망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중국 지리차가 정확한 자율주행 내비게이션 정보를 제공하겠다며 저궤도 위성을 올리는 것도 주목된다. 반면 ‘통신강국’ 한국은 저궤도 위성엔 큰 관심이 없다. 우물 안 이동통신 싸움에 매몰돼 우주 위성통신 시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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