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직업 위세(occupational prestige)'는 특정 직업이 가지고 있는 권위·중요성·가치·존경에 대한 인식이나 평가를 뜻한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직능연)이 지난해 5개 국가 취업자들을 상대로 ‘직업 위세’에 대해 물은 결과가 흥미롭다. 15개 직업을 제시한 뒤, 위세 점수(0~5점)를 매기도록 했다. 미국과 독일은 소방관을, 한국·일본·중국은 국회의원을 1위로 꼽았다. 하지만 순위보다 격차가 한국의 암울한 자화상을 보여줬다.
□ 미국인들은 국회의원의 위세를 12위로 봤다. 중소기업 간부사원(7위), 은행 사무직원(9위)보다 낮다. 독일도 국회의원은 10위에 머물렀다. 독일과 중국은 중소기업 간부직원을 각각 5위, 4위로 높게 봤다. 한국은 중소기업 간부가 10위, 소방관은 11위에 불과해 가장 낮았다. 한국의 직업 위세 2~5위는 약사, 인공지능전문가, 소프트웨어개발자, 영화감독이었다. 의사는 15개 조사 직업에 포함되지 않았다.
□ 순위보다 더 큰 문제는 격차이다. 한국인은 1위(국회의원/4.16점)와 15위(건설일용근로자/1.86점) 직업의 위세 차이를 가장 크게 바라봤다. 1위 직업의 위세가 4점을 넘은 국가는 한국과 중국뿐이며, 15위 직업의 점수가 2점에 못 미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다. 미국은 1위 소방관(3.93)과 15위 음식점종업원(3.01)까지 3점대일 정도로 직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평등했다. 15위 직종(건설일용직이나 음식점종업원)에 대한 시선은 한국인을 제외하곤 모두 2.5점 이상이었다.
□ 직능연 보고서(직업의식 및 직업윤리의 국제비교 연구)를 보면, 직업 위세는 한 사회의 기회구조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보여주며, 분배적 정의와 형평의식 파악에도 도움을 준다. 그런 면에서 이번 조사 결과는 서열, 경쟁, 승자독식, 직업의 귀천이 숨 막히게 작용하는 한국 사회의 풍경을 드러냈다고 하겠다. 다만 약간의 희망도 보인다. 2007년 조사(1위 국회의원 4.21/ 15위 건설일용노동자 1.56)보다 직업 간 위세가 줄었다는 데서 위안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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