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간성에선 우레 소리가 북에서 남쪽으로 향할 즈음, 푸른 하늘에 연기처럼 생긴 것이 두 곳에서 났다. 형체는 햇무리 같고 움직이다가 한참 멈추었다. 원주에선 붉은 배처럼 생긴 게 천둥소리를 내며 갔다. 강릉에선 호리병 같은 게 빠르기가 화살 같았다. 춘천에선 모양이 동이 같았다고 했고, 양양에선 세숫대야처럼 둥글고 빛나는 게 땅에 떨어질 듯하다가 곧 올라갔다. 어떤 기운이 공중에 뜨는 거 같았다고 한다. 조선 광해군 1년 음력 8월 25일 강원도 일대에서 한낮 맑은 하늘에 일어난 일이다.
□ 영락없는 미확인비행물체(UFO) 목격담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이 일기는 2013년 공전의 히트를 친 전지현 김수현 주연의 TV시리즈 ‘별에서 온 그대’ 모티브가 됐다. 상상력에 역사적 사실성을 덧대니 호기심을 더 끌 만하다. 사랑을 찾아 사람이 된 인어 이야기를 그린 미니 시리즈 ‘푸른 바다의 전설’(2016년)은 조선 중기 문신 유몽인의 '어우야담'에서 뼈대를 가져왔다. 강원도 흡곡현 현령이 어부가 잡은 인어를 안쓰럽게 여겨 바다로 돌려보냈다는 이야기에 현대적 살을 입혔다.
□ 주술 기록이 많은 조선왕조실록 일기 가운데 인재부족 이유에 대한 정조의 논의가 흥미롭다. 북관(北關)에 인재가 없는 게 명나라 초기 도사 서사호가 단천 현덕산에 쇠말뚝 다섯 개를 박고 떠난 탓 아닌가 했고, 북한산성 아래 소금을 쌓고 태워 만들어진 염산 탓에 서울의 맥을 누르는 것이냐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이치에 밝은 정조라 서울에 소금산은 없다 하니 흐지부지됐다. 나라와 인재의 기운을 없애는 쇠말뚝설은 뿌리가 깊다.
□ 최근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파묘'는 일제의 풍수침략설을 모티브 삼았다. 한때 쇠말뚝 뽑기 전국 붐이 일 정도였지만 근거가 불분명하다. 영화에서도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토지측량용이라잖아, 99% 가짜 아니냐”고 하자 지관인 상덕(최민식)은 “그럼 1%는…”이라며 다투는 대목이 나온다. 오랜 기담에 MZ 무당의 신들린 굿판이 잘 어우러졌다. 상상력의 보고(寶庫)라 할 만한 얘기는 우리 옛글에 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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