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서 보듯, 한국 기업들이 고질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다는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 이슈의 해결 방법으로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거론된다.
현대 기업에서 지배구조 개선은 경영자가 주주 이해에 반하여 권한을 남용하고 사익을 추구할 유인을 방지하는, 리스크 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경영자와 이해관계자들 간의 불신과 대립구도를 전제로 한다. 기업지배구조 관련, 학계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저비용 기제로 기업 성과와 면밀히 연동시킨 경영자 보상 시스템을 꼽는다. 경영자가 자신의 이해를 추구하는 대신,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두루 고려하여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진력하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최선의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국내 기업도 도입 중인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Restricted Stock Units)은 그런 취지의 대표 구조다.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구미 기업에서 널리 활용 중인 경영자 보상제도의 하나이다. 경영자가 내린 의사결정이 기업 성과로 나타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성과보상을 장기간 이연하여 주식 등으로 지급함으로써 경영자의 성과와 중장기적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고안됐다.
이 제도는 스톡옵션과 비슷하지만 큰 차이를 보인다. 스톡옵션은 당장 현금이나 주식으로 보상할 여건이 안 되는 스타트업에서도 활용되듯이 매수 권리를 부여하는 파생상품 성격이 강한 반면, RSU는 보상 이연과 장기 성과연동이 핵심이다. 2001년 미국 엔론의 회계부정 사건 여파로 2002년 사베인스-옥슬리 법안(Sarbanes–Oxley Act)이 제정된 직후 필자도 참가한 미국의 기업지배구조 관련 학회에서도 스톡옵션 대안으로 RSU가 활발히 논의됐다. 능력 있는 경영자들이 미래지향적 비전을 갖고 중장기적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도록 동기부여할 수 있다면 그 수혜는 주주는 물론, 소비자와 지역사회, 국가경제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RSU는 최고경영진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임직원에 부여할 수 있는 만큼, 우수 인재를 확보·육성하여 회사의 장기 발전에 기여하는 효과적 수단이 된다. 특히 경영진의 역할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효과적이다. 한국의 경우 대주주 책임경영이 강조되고, 오너 일가가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법적 의무와는 무관하게 기업이 어려움에 빠지면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이 공공연하게 논의된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오너 경영인이 회사 발전을 위해 몰입할 수 있는 보상제도를 설계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오너 경영인에게도 전문 경영인과 동일하게 RSU와 같은 주식기준보상 제도를 확대 적용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는 조치다. 실제로 글로벌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평가기관들은 기업이 경영자와 주주 사이의 이해관계 일치를 위해 주식보상을 얼마나 제공하는지를 평가에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RSU 확대는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상법상 이사 보수에 대하여는 주총 승인을 얻도록 하고 있어 RSU와 같은 주식보상도 주총에서 승인받은 한도로 부여가 제한되며, 일정 규모 이상의 이사 보수는 사업보고서 공시 대상이다. 주식보상을 위한 자기주식 취득 및 처분은 상법 및 자본시장법에 따른 요건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공시 의무도 준수해야 한다.
금융감독당국은 지난해 말 공시서식을 개정, 투자자들에게 주식기준보상 관련 정보가 충분히 공시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투자자들의 투자 판단을 위한 충분한 공시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본다면 납득할 수 있는 규제 장치의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사 보수에 대한 일반적 규제 및 자기주식 취득, 처분에 관한 규제, 공시 관련 규제 등 기존 법제도하에서 이루어지는 RSU 제도에 대한 규제를 넘어, 글로벌 기업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법적 규제를 추가로 마련해서는 안 된다. 기업 경영의 자율성이나 유연한 보상체계 설정에 장애가 되어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하락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지배구조는 수많은 이해관계자 간의 권한과 책임을 배분하는 문제를 다루는 영역이고, 기업마다 이해관계자의 유형과 분포 또한 천차만별이다. 이 때문에 기업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정관의 틀 안에서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도록 재량을 부여하는 것이 한국 기업의 밸류업을 앞당기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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