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정치 그거 사람이 하는 거 아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오면 그때 가서 해라. 절대 안 된다."
4년마다 300명의 국회의원이 바뀌고 또 바뀌어도, 30여 년 세월 묵묵히 여의도를 지켜온 국회 인사가 있다. 그는 모친의 신신당부에 애당초 배지는 꿈도 꾸지 않았다고 한다. 출마 제의도 받았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국회의원이 권력에 취할수록 어떻게 망가지는지, 민생을 내팽개친 여야가 얼마나 으르렁거릴 수 있는지, 정치의 금도는 어디까지 무너져 내리는지 뻔뻔하고 교활한 민낯을 코앞에서 마주하다 보니 더 얼씬대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스럽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정치는 하면 안 되는 거 같아요." 처음엔 '사랑스럽다'로 잘못 알아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재차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사람스럽다"였다. 사람의 도리에 맞게 살기 위해선 정치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얘기였다. 전·현직 그리고 예비 국회의원들 입장에선 서운하게 들릴 수 있지만, 민심은 배지들을 '사람답게도, 사랑스럽게도' 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어떻게 그렇게 싸움박질만 한대요. 하는 일도 없는데 돈은 왜 많이 받고." 여의도 출퇴근길에 종종 마주치는 택시기사들의 멘트는 대한민국에서 생산성은 가장 낮고, 해롭기론 제일가는 공간이 바로 국회라는 비아냥을 대변해준다. 내 손으로 뽑아놓은 일꾼을 욕하는 것도 지칠 즈음, 새로운 선택의 시간이 또다시 다가왔다. 앞으로 4년, 그나마 덜 욕하기 위해 어떤 이들을 뽑아야 할까.
일단 잘 걸러내는 게 중요하다. 여야 공히 문제적 후보를 앞다퉈 잘라낸다고 잘라냈는데, 공천이 끝나고도 뒤탈이 계속 나고 있다. 부실 검증의 업보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거친 언사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 야당 후보는 대학생 딸 명의 '편법 대출'을 받아 강남 아파트를 장만하는 남다른 재테크의 기술로 비판의 중심에 섰다. 여당에선 사이즈도 남다른 양평 땅 2,500평 등 투기 의혹에 휩싸이거나, 100억 원대 전세사기범을 변호해 구설에 오른 후보도 있다. 성적 막말을 아무렇게나 토해낸 야당 후보 역시 여전히 살아남았다. 저마다의 눈높이는 다르겠지만, 보통의 도덕적 감수성을 거스르는 이들을 계속 둘지 말지는 이제 국민 손에 달렸다.
거른 이후 선택의 기준은 진짜 주인을 섬기는지 여부다.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선출직들은 국민의 공복이다. 하지만 모셔야 할 주인이 누구인지를 잊고 화를 키우는 게 문제다. 제1야당 대표는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소속 의원들은 그 대표를 지키겠다며 충성 맹세를 한다. 영부인 관련 의혹에 침묵을 지키는 대통령까지. 이들을 뽑아놓은 주인들은 뿔이 날 수밖에 없다.
"정치를 개같이 하는 게 문제다. 정치는 죄가 없다"는 여당 비대위원장의 발언은 그래서 틀렸다. 주인에게 충직한 반려견은 교감도 하고, 주인의 눈치도 본다. 그래서 때로는 그 자체로 힐링을 주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정치는 그마저도 못하고 있으니, 이 비유는 옳지 않다. 선거 때마다 득표 수단으로만 국민을 이용하는 정치와 정치인들이 죄다. 그러니 주인을 섬기는 일꾼에게 일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도 8일 뒤 투표장에 나오자. 300명의 배지를 '사람답게, 사랑스럽게' 길들이는 건 결국 주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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