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 장기화로 병원노동자 고통 가중
인력 감축 탓 업무강도는 되레 높아져
"환자·노동자 참여한 대화체 마련해야"
"병원도 예측이 안 되니까 당일에 전화해 쉬라고 하는 거예요."
1일 만난 전공의 수련병원 간호사 A씨는 의정갈등 사태가 길어지면서 업무 패턴이 엉망이 됐다고 울분을 토했다. 의사가 없어 병동을 축소하고 환자도 가급적 안 받다 보니 병원 측이 일이 없어진 간호사들에게 연차를 쓰도록 사실상 강요한다는 것이다. A씨는 "연차가 없는 신규 간호사는 마이너스통장처럼 다음 분기 휴가를 당겨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토로했다.
의료계 집단행동의 피해자는 환자만이 아니다. 전공의가 떠난 빈자리를 메우며 분투하고 있는 다른 병원 구성원들도 또 다른 피해자다. 간호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약사 등 보건의료노동자들은 비상경영체제라는 미명하에 현장 노동자들이 고통을 떠안고 있다고 호소한다. 이들은 환자, 보건의료노동자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한 '사회적 대화체' 마련을 정부에 촉구했다.
서울지역 전공의 수련병원 노조 대표자들은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공의 현장 복귀와 근본대책 수립을 위한 병원장 면담을 요구했다. 회견에는 '빅5'로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을 포함해 19개 전공의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는 보건의료노동자가 참여했다.
간호사들은 인력 부족을 이유로 진료지원(PA)간호사의 업무를 일반간호사에게 확대 시행한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특히 제대로 된 교육·훈련을 거치지 않은 저연차 간호사들마저 수술장 보조, 검사 시술 보조, 검체 의뢰 등 의사 업무를 맡고 있는 실정이다. 송은옥 보건의료노조 고려대의료원 지부장은 "간호사들은 법적 보장도 안 되는 업무를 하면서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 계속된 자기 검열 속에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별안간 다른 진료과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도 적잖게 닥친다. 수도권 전공의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B씨는 "많은 업무를 대체하다 보니 다른 부서로 갑작스레 파견될 때가 있다"면서 "안 해본 일을 하는 탓에 기본 업무만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등 의료기사 역시 휴가를 강요받고 있다. 서울 대형병원에서 일하는 방사선사 C씨는 "외래환자 수가 10~20% 줄어도 업무는 기존과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병원 측에선 전체 인력 10분의 1을 대상으로 무급휴가를 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상병리사 D씨도 "병원 측이 인건비 절약을 이유로 휴가를 계속 권유하면서 남은 직원들의 업무량이 평소보다 30% 늘었다"고 전했다.
갈수록 진료받기가 어려워진 환자들의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충북 보은에서 종합병원 이송을 거부당한 영아가 숨진 사례까지 발생하자, 화살은 대화에 미온적인 정부와 의료계 양쪽으로 향하고 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은 "정부는 환자 사망 사태와 무관하다는 입장만 밝힌다"면서 "의대 교수들도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으로 복귀하도록 설득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지 현장을 이탈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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