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고수'를 찾아서
어쩌면 한국 수의사들이 이 질병을 제일 많이 마주할 거예요. 슬개골 탈구와 더불어 가장 많이 보는 질병이 아닐까 싶네요.
서울 성산동 우리동생동물병원 김희진 원장은 3년째 심장 관리를 받고 있는 반려견 ‘에디’(14∙몰티즈)가 앓는 병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디가 앓고 있는 질병은 심부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첨판 폐쇄부전’입니다.
김 원장이 이첨판 폐쇄부전이 한국에서 많이 발병한다고 설명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에디와 같은 소형견, 그중에서도 몰티즈 품종이 잘 걸리는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많이 진단된 질병이라면, 치료법도 새로 나왔을 법 하지만, 이 질병은 여전히 완치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드물게 수술적 치료법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실험적인 까닭입니다. 게다가 대부분 나이가 들어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수술이 큰 모험인 경우도 많다고 하네요.
보통의 반려인이라면 이런 상황에 한숨을 쉴 법 합니다. 이첨판 폐쇄부전은 혈류가 원활하지 않아 심장이 크게 부풀어 오르며 호흡기에 영향을 줍니다. 특히 몸통이 작고 가슴이 좁은 몰티즈라면 더더욱 호흡기 압박이 심해집니다. 이럴 경우 호흡을 원활하게 해주기 위해 산소방에서 반려견이 지낼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호흡곤란을 앓는 반려동물을 위해 산소방을 준비해 준 보호자들은 이 산소방 임대료도 만만치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죠.
그런데 에디네 가족의 문제는, 이렇게 이첨판 폐쇄부전을 앓고 있는 친구가 에디 혼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에디 보호자 장진규 씨 부부는 지난해부터 반려견 ‘벡스터’(11∙요크셔테리어)를 에디와 함께 키우기 시작했는데요. 공교롭게도 벡스터 역시 이첨판 폐쇄부전으로 에디와 같은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김 원장은 벡스터의 상태에 대해 “에디보다는 상태가 괜찮아서 약을 조금 덜 처방하고 있다”면서도 “체중 관리를 조금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반려견 하나도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병에 걸렸으면 돌보기가 여간 쉽지 않을 텐데, 두 마리를 한꺼번에 돌봐야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그런데 진규 씨 부부의 표정은 밝았고, “약 먹고 관리하면서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는 목소리에는 여유가 넘쳤습니다.
30년 경력의 반려생활.. 숱하게 겪은 이별
진규 씨와 에디의 연은 14년 전인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생활 근거지가 미국이었던 진규 씨는 질병 치료차 한국에서 잠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때 가족들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진규 씨 곁을 지켰는데요. 이 모습을 보던 진규 씨의 딸이 ‘강아지를 데려와 지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권한 겁니다. 그때 입양한 강아지가 바로 에디였습니다.
에디는 처음 만날 대부터 우리 가족들 다리로 달려들면서 안아달라는 제스처를 취했어요. 집에 와서도 적응을 잘 했고, 사회성이 좋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었던 것 같아요.
에디는 자신의 활발한 성격을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진규 씨가 미국으로 돌아갈 때도 함께 한 에디는 진규 씨 가족이 먼저 키우던 골든 리트리버 품종 ‘메리’와도 매우 잘 지냈다고 해요. 하와이에서 생활한 진규 씨는 해변가와 등산을 즐기며 건강을 회복했는데, 이 당시 산책 메이트는 항상 메리였다고 합니다.
2017년, 진규 씨가 한국으로 영주 귀국한 뒤에도 에디의 산책 본능은 어디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주일에 2-3회 장거리 산책을 다닐 때마다 진규 씨의 곁을 지킨 건 에디였습니다.
그러던 2021년. 활발하던 에디가 갑자기 숨을 이상하게 쉬기 시작했습니다. 진규 씨는 “헛기침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며 “뭔가 이상하다 싶어 병원에 달려갔더니 심장병 진단을 받았다”고 당시를 돌아봤습니다. 그런데, 이 진단을 받고 난 뒤 진규 씨의 반응은 정말 덤덤했다고 합니다.
저희가 에디를 키우기 전 미국에서 살 때, ‘치치’라고 작은 포메라니안을 키운 적이 있었어요. 그 친구도 똑같은 병을 앓고 있었던 거예요. 그때도 수의사 선생님이 약을 꾸준히 먹으면서 어느 날 갑자기 떠날 수도 있다고 말해줬는데, 정말로 그렇게 됐어요.
에디 역시도 갑자기 세상을 떠날 뻔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잘 지내던 에디가 갑자기 제대로 숨을 못 쉬며 이상 증상을 보였습니다. 급하게 동물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촬영해 보니 폐수종이었습니다. 이미 폐에 체액이 절반 가까이 차오른 겁니다. 김 원장은 “이뇨제를 줄이는 과정에서 폐에 물이 차올랐다”며 “다시 이뇨제를 증량하고, 지금은 약을 줄여가며 상태를 다시 보는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하루 사이에도 급변할 수 있는 상태지만, 과거 경험이 있던 보호자였기에 대응은 침착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입원해서 상태를 좀 지켜보자, 심각할 수 있다고 했어요. 저희는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면 집에서 보내는 게 좋겠다는 입장이어서 약을 처방받고 데려갔어요. 그런데 그 약을 먹고는 괜찮아진 거예요. 원장님도 나중에 ‘1주일 뒤에 보자고 했지만, 정말 돌아올 줄은 몰랐다’고 말씀하셨을 정도였죠.
여유 속에 숨은 반려견을 향한 진심
김 원장은 이첨판 폐쇄부전을 앓는 반려견을 키울 때 가장 중요한 자세는 ‘여유’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반려견이 흥분하지 않는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는 “만약에 반려견에게 목욕도 매일 하고, 발톱도 깎고, 미용도 정해진 때 깔끔하게 예쁘게 해왔던 보호자가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심장병 진행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반려견이 긴장을 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병을 키울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에디에게 평화롭고 침착한 진규 씨 부부는 최선의 보호자일 겁니다. 그 침착함은 반려동물의 생사에 대해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메리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때 느낀 게 있어요. ‘죽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냥 가는 날까지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하는 게 우리가 얘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마음이었죠.
죽음을 받아들이자는 말이 곧 포기를 뜻하는 건 아닙니다. 김 원장은 “약을 제때 먹는 반려견과 그렇지 않은 반려견은 임상증상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에디는 물론 벡스터 역시도 약을 잘 먹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지난해부터는 딸이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온 벡스터도 함께 관리 대상이 되었습니다. 벡스터는 처음 구조될 때부터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게 발견되었었죠.
다행히 약을 먹는 것도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피넛버터, 꿀 등 약과 함께 섞어 먹이는 간식들을 주기적으로 바꿔주는 까닭에 반려견들도 지루함이나 저항 없이 잘 받아들인다고 하네요. 그런 까닭에 진규 씨의 웃음은 줄어들 새가 없다고 합니다.
저희 나이가 이제 은퇴하고 좀 있는 편이에요. 이제 늙은 부부 둘이서 살면서 크게 웃을 일이 없는데 이 녀석들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이 정말 커요. 그래도 얘들보다는 우리가 조금 더 오래 살 테니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보살피는 게 그 행복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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