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도로시 워즈워스의 수선화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의 대표 시 중 하나인 ‘수선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외로이 방황했네/ 골짜기와 언덕 위를 떠도는 구름처럼/ 그러다 문득 보았네/ 지천으로 피어난 황금빛 수선화/ 호숫가에서, 나무들 아래에서/미풍에 흔들리는 그들의 춤사위를”
햇빛에 반짝이는 꽃들을 은하수의 별들에 비유하고 하늘하늘 꽃대의 흔들림을 물결에도 견주며, 시인은 꽃들이 선사한 값진 기쁨을 노래한다. 마지막 연은 이렇게 맺는다. “이따금 긴 의자에 누워/ 멍하니 때로는 우울한 생각에 잠겨 있노라면/ 고독의 축복인 양/ 눈앞에 번쩍 떠오르는 그 꽃들/ 마음은 다시 기쁨으로 넘쳐/ 수선화와 함께 춤춘다.”
저 시를 쓰던 1804년 무렵, 그는 아내 메리 허친슨과 한 살 터울 여동생 도로시와 함께 잉글랜드 북서부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그라스미어(Grasmere)란 곳에 살았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뒤 윌리엄은 기숙학교로 대학으로(케임브리지 세인트존스 칼리지), 또 혁명기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살았지만 도로시는 친척집 등을 떠돌며, 20대 초반까지 눈칫밥을 먹고 살아야 했다. 1799년 남매는 '도브 코티지'라고 부르던 호숫가 저 집을 마련해 비로소 정착했다. 도로시에겐 처음 제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게 된 셈이었다. 가난했던 남매는 유일한 유희 겸 노동으로 산책을 즐겼다. 산책길에 땔감도 줍고 나물도 캐고 우편물도 받아오곤 했다고 한다. 저 시도 1802년 4월 15일 산책길에 마주친 수선화 군락에서 영감을 얻어 쓴 시였다.
덜 알려졌지만 도로시도 오빠 못지않은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였다. 그날 자 일기에 도로시는 이렇게 썼다. “(...) 그들은 이끼 낀 돌들 사이에도 있었고, 피곤한 듯 바위를 베개 삼아 머리를 얹고도 있었다. 다들 몸을 뒤척이며 춤을 추었고 호수를 건너 불어온 바람에 자지러지듯 웃었다. 너무 유쾌해 보였다.(...)” 오빠가 동생의 일기를 표절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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