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매일매일, 시시각각 한국일보 플랫폼은 경쟁매체 보다 빠르고 깊은 뉴스와 정보를 생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1954년 창간 이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거나 국민적 감동을 이끌어낸 수많은 특종이 발굴됐다. 지난 70년 다수의 특종과 사건 중 파장이 컸던 내용들을 연도별로 안배해 ‘70대 특종’을 골라내 뉴스 이용자들에게 소개한다.
‘전진할 때는 선봉부대와, 후퇴할 때는 최후미 부대와 같이 행동한다.’
독자들의 알 권리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를 누비는 ‘종군 기자’의 각오를 보여주는 말이다. 창간 이후 70년간 한국 언론의 기자정신을 이끌어온 한국일보는 ‘종군 기자’라는 분야에서도 선도적 역할을 했다. 그 대표 사례가 월남으로 불리던 베트남의 수도 사이공 최후의 새벽을 목도하고 지면에 실은 안병찬 기자였다.
안 기자는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당시 월맹군)이 사이공을 향해 공격을 퍼부으며 최후 진격에 나섰을 때 현장을 사수했다. 그가 베트남 패망 이틀 전, 사이공 중앙우체국의 텔렉스로 보낸 현장 르포기사는 한국 언론이 전한 사이공발 최후 기사였다. 더 이상의 송고 수단을 확보할 수 없었지만, 안 기자는 '사이공 최후의 표정을 컬러로 찍고 돌아오라'는 본사 미션의 수행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안 기자가 탈출을 결심한 건 월남이 항복선언을 하기 불과 6시간 전인 4월 30일 새벽 4시 5분이었다. 탈출 경로는 미국 대사관에서 떠나는 헬리콥터가 유일했다. 조마조마한 기다림 끝에 극적으로 마지막 헬기를 타고 현지를 빠져나올 때까지도 그의 후속 취재는 계속됐다.
안 기자는 사이공 탈출 이후 한국일보와 다수의 매체를 통해 알려진 취재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사이공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나는 서울 본사로부터 ‘빨리 철수하라’는 전문을 다섯 통 받았다. 나도 인간적으로 겁이 났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이 나의 특종인데, 그 널린 특종들을 그냥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안 기자의 베트남 탐사는 사이공 탈출 40년 뒤에 다시 이뤄진다. 한국일보 재창간 원년인 2015년 한국일보 취재진의 신분으로 현지를 찾았다. 2015년 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 신분이기도 했던 안 기자는 현지에서 40년의 세월을 건너뛰면서 급변한 베트남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는 한편, 한ㆍ베트남 양국 관계의 바람직한 길을 탐색하는 르포를 3회에 걸쳐 연재했다.
안 기자는 사이공을 탈출한 뒤 보름 만인 5월 13일 편집국에 돌아왔다. 안 기자는 괌에서 사이공 함락 직후의 탈출 과정을 기사로 작성, 5월 7일자부터 10회에 걸쳐 '현장서 본 월남의 최후-사이공에서 괌도까지'를 인기리에 연재했다. 안 기자는 그해 7월 월남 패망 3일간의 생생한 기록을 담은 '사이공 최후의 새벽'을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한국일보 70년·70대 특종 (연도순)
9 | 경주 155호 고분(천마총) 금관발굴(1973) |
10 | 남산타워 필화사건(1974) |
11 | 사이공 최후의 새벽(1975) |
12 | 한국일보 후원 등반대,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1977) |
13 | 대한항공 여객기 소련 무르만스크 강제착륙 (사진·19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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