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야 할 책에서 써야 할 글자만 뽑아낸
'대만의 독서왕' 탕누어 독서론의 절정
편집자주
로마시대 철학자 키케로는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몸과 같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책이 뭐길래, 어떤 사람들은 집의 방 한 칸을 통째로 책에 내어주는 걸까요. 서재가 품은 한 사람의 우주에 빠져 들어가 봅니다.
지금 막 번역 작업에 들어간 책이라며 번역가 김태성(65)은 '구검'이란 제목의 책을 내밀었다. 각주구검(刻舟求劍)에서 각주를 빼고 구검이다. 우둔하고 미련스럽게 책의 바다를 찾아 헤맨 끝에 길어낸 칼들이란 의미다. 김태성은 "딱 탕누어스러운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이라며 웃었다.
'한자의 탄생'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같은 책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대만 작가 탕누어(唐諾··66)는 스스로 직업을 '전문 독자'라 일컬을 정도로 읽고 또 읽는 사람이다. 아내 주톈신(朱天心) 또한 10대 때 이미 '대만의 프랑수아즈 사강'이란 별명을 얻은 베스트셀러 작가다. '비정성시 각본집'으로 잘 알려진 주톈원(朱天文)은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주톈신과 자매다. 집안 분위기가 만만치 않다.
"핸드폰도, 이메일도, 노트북도 없는 탕누어를 만나려면 타이베이 집 근처 카페에 가야 해요. 탕누어는 매일 아침 카페로 출근해서 대락 3,000자 정도를 원고지에 쓰고, 그 가운데 600자 정도만 남깁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하루 종일 책을 읽어요. 정말 읽어야만 하는 책을 읽은 뒤 가장 써야 할 말만 써서 1년에 책 한 권 정도 내놓는 방식이지요. 그런 사람의 책이니 얼마나 밀도가 높겠어요."
그래서 번역가로선 제일 꺼려지는 작가가 탕누어이기도 하다. 고도로 압축된 문장을 한국어로 풀어내려니 1차적 해석부터 우리말 표현으로 가다듬기까지 숨이 턱턱 막히기 일쑤다. 어떤 문장은 10번 정도 읽어야 감이라도 잡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또 다시 묘하게 손이 가고야 마는 책이 탕누어 책이다.
"번역할 때 '저번에 그렇게 고생했는데 왜 또' 하고 스스로 고개를 젓다가 그 엄청난 깊이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문장을 한국어로 잘 옮겨놓고 나면 그 기쁨,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죠." 번역하다 그래 이게 문장이지, 이게 책이지, 이게 저자지 무릎 치는 경험이 이어지다보면 다음 책 번역을 그만 또 떠안게 되기 마련이라 했다. '구검'도 그렇게 번역을 시작한 책이다.
"세상 온갖 책을 다 섭렵한 이런 일급 작가의 글을 1만 몇 천원 짜리 책 한 권으로 즐길 수 있다는 거, 그거 우리 독자들에겐 엄청난 축복이고 행운입니다. 이번 책은 빨리 낼테니 꼭 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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