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소비자에게 1,800유로(약 267만 원)에 팔리는 이탈리아 명품 조르조 아르마니 핸드백. 최근 이 가방의 비밀이 들통났다. 2차 하청을 거쳐 이 백을 만든 불법 중국 업체는 단 93유로(약 13만 원)를 받았을 뿐이었다. 명품 브랜드 상품에 수백만 원을 지불할 때, 그 돈은 어떤 가치에 대한 대가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사례다.
□ 이탈리아 밀라노 법원은 이달 5일 조르조 아르마니 패션 그룹의 자회사인 ‘조르조 아르마니 오퍼레이션 SPA’를 1년간 사법 관리 대상으로 지정했다. 조르조 아르마니의 의류, 액세서리 디자인과 생산을 담당하는 이 회사는 하청업체에 핸드백 생산을 맡겼고, 이 하청업체는 다시 밀라노 인근에 있는 중국 업체에 하청을 줬다.
□ 2차 하청업체의 중국인 노동자들은 휴일 없이 하루 14시간 이상 일했다. 시급은 2, 3유로(약 2,900∼4,400원)였다. 이들은 불법체류자 처지였다고 한다. 현지 경찰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노동자들은 지저분한 화장실과 깨진 싱크대, 골판지로 막은 창문이 있는 곳에서 생활했다. 핸드백의 단계별 가격 추이는 2차 하청이 받은 금액 93유로(약 13만 원)→공인 1차 하청이 원청에서 받은 금액은 250유로(약 37만 원)→원청의 소비자 판매가는 1,800유로(약 267만 원)이다.
□ 이런 현상은 한국도 낯설지 않다. 2018년 백화점에서 30만 원가량에 판매되는 탠디 구두 한 켤레를 하청 제화공이 만들 때 6,500~7,000원 정도의 공임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30만 원의 구둣값 중 35%는 백화점 매장 입점 수수료, 20%는 위탁 고용한 매장 매니저 몫으로 돌아갔다. 당시 제화공들은 파업을 통해 공임 1,300원을 올려 받았을 뿐이다. 그나마 아르마니의 다단계 하청은 이탈리아에서 불법으로 인정돼 공장이 폐쇄되고, 중국인 공장 소유주에게 벌금과 행정 제재가 내려졌다. 아르마니 그룹도 재하청을 알지 못했다며 “당국과 최대한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단계 하도급에 관대한 한국보다 해피엔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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