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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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며 폭력과 살육으로 스스로 고통받아 왔다. 2020년대를 살고 있는 현재도 다름이 없다. 이때 음악은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프랑스의 현대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은 전쟁 포로로 붙잡힌 와중에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를 작곡하며 전쟁의 공포를 내면의 영성으로 견뎌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파리에서 전도유망한 작곡가로 주목받던 메시앙은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자 전쟁포로로 붙잡혀 독일과 폴란드 국경에 접한 괴를리츠의 수용소로 이송됐다. 메시앙에게 부여된 수감번호는 35333, 포로들은 화강암을 채굴하는 위험하고 거친 부역에 내몰렸고, 많은 사람들이 혹한과 기근으로 사망했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끔찍한 수용소에서 메시앙에게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다. 교도관이었던 칼 알버트 브륄은 '프랑스의 모차르트'라 불리던 메시앙의 뛰어난 음악성을 단박에 알아보았고, 오선지와 연필, 지우개를 제공했다. 화강암 채굴 대신 요리를 담당하는 조리병으로 임무를 바꿔주었다.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는 수용소에 갇힌 1940~41년 사이 작곡됐다. 그런데 악기 조합이나 쓰임새가 특이하다. 수용소에서 구할 수 있던 악기들의 열악한 사정이 고스란히 반영된 까닭이다. 첼로는 4개 현이 아니라 3개의 현으로 지탱했고, 피아노의 망가진 건반은 한번 누르면 다시 되돌아오지 않았으며, 바이올린 몸통은 혹한을 버티지 못해 금이 가 있었다. 그나마 자신의 악기를 보유했던 연주자는 클라리넷 주자뿐이었다. 그러므로 이 4중주에선 클라리넷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고, 피아노는 배경으로 물러나 음향에 색깔을 입히는 화음 악기로 기능한다.
메시앙은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멈춘 후에도 소리는 지속된다." 전쟁의 참혹한 실상은 인류에게 세상의 종말을 일깨웠고, 음악가인 메시앙은 여기에 더해 시간의 종말을 도모했다. 이 4중주에선 기존 서양음악사를 지배했던 균등한 박자 시스템을 끊임없이 교란시키며 시간의 종말, 그 이후의 영역을 개척한다. 초연을 접했던 전쟁 포로들은 이렇게 증언한다. "시간과 일상이 잠시 멈춘 듯, 영적 울림으로 가득했다. 덕분에 수용소의 가혹한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전쟁 한가운데, 파괴적 상황에서 작곡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천상에서 들려오듯 아름다운 선율은 이 작품의 5악장에서 만날 수 있다. 메시앙이 악보 초입에 새긴 '무한히 느리게, 황홀한(Infiniment lent, extatique)'은 참혹한 전쟁의 실상을 견뎌낸 영성의 울림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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