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편집자주
열심히 일한 나에게 한 자락의 휴식을… 당신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방법, 음식·커피·음악·스포츠 전문가가 발 빠르게 배달한다.
얼마 전 수습을 갓 마친 직원이 쭈뼛쭈뼛 내 방으로 들어오더니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다반사로 겪는 일이라 놀라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퇴사 이유가 궁금했다. '생각하는 일'이 너무 많아 힘들었다고 대답했다. 커피와 커피 볶는 기계에 관해 배운 것을 매일 업무일지에 써야 하는데, 현장 업무를 마친 후 일과를 돌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정식 직원으로서의 실무는 아직 걸음마도 안 뗀 상태였다. 한데 선배들을 따라 현장을 익힌 후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너무 버거웠다고 하니, 군말 없이 집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일로 카페를 자주 방문하는데, 유사한 현상을 부쩍 자주 목격하게 된다. 직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장님들 중에서도 '생각할 게 너무 많아서 카페 운영이 힘들다'고 토로하는 이가 의외로 많다. 특히 직원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춰 설명하고 가르치는 일이 버겁다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새로 생겨나는 대다수 카페에는 동일한 모델의 기계와 기구가, 그것도 디지털 표시 기계와 자동 머신 중심으로 세팅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진다. 우리 커피집만의 개성이나 맛보다는, 정해진 프로세스에 따라 '일률적인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선이다.
이해는 한다. 손님들은 커피 품질을 따지기보다 계산하자마자 빠르게 나오는 커피를 선호하고, 가게로서도 최대한 높은 매출을 내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다만 커피는 와인이나 위스키와는 달리 현장에서 커피를 내리는 이의 생각과 감각, 경험이 짙게 개입되는 음료다. 만드는 이와 마시는 이 사이의 교감이 투영돼 만들어지는 한 잔의 커피. 오래된 커피인들은 이 과정을 '자기표현'이라고 부른다. 그런 커피에 매료돼 커피 세계로 이끌린 나는, 이 과정이야말로 한 잔의 커피를 '작품'으로 격상시키는 요체라고 믿는다.
기계로 일률적인 맛을 찍어내는 카페들은 대신 인테리어와 포장으로 자기를 어필하려 발버둥 친다. 그러나 커피의 본류는 누가 뭐래도 '음식'이다. 음식으로서 맛있고 돋보여야만 오래 살아남는다. 정성스러운 한 끼로 반백 년을 이어오는 동네 밥집처럼 말이다.
그나저나 '생각 같은 거 하지 않는 일'을 찾겠다던 신입에게 그럼 어떤 걸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생각 없이' 타일 붙이는 일이나 하겠다고 답했다. '그게 정말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냐고 생각하냐?' 묻고 싶었지만, 생각하는 게 싫다고 했으니 침묵했다. 타일 작업하는 분들께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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