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 여행지서 男동창의 무차별 폭행
엿새 뒤 의식 잃어, 인공호흡기 의지
"사과 한마디 없어" 피해자 母 절규
징역 6년… 피고인 "형 무겁다" 항소
“아직 채 꽃도 피우지 못한 우리 딸. 딸은 그렇게 당하고도 끝까지 친구들을 감싸주려고 했어요.”
여행을 함께 떠난 중학교 남자 동창 B씨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해 식물인간이 된 A(20·여)씨의 어머니는 10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하며 흐느꼈다. 딸은 동창생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도 어머니에게 사실을 털어놓지 않은 채 그저 넘어졌다고만 했던 것이다. 반면 가해자인 B씨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A씨 어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을 반죽음으로 만든 가해자는 사과 한마디 없다”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딸 억울함 풀어주세요"… 구형 높인 검찰
이 사건은 지난 4월 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A씨 어머니가 ‘저희 딸아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A씨를 폭행한 남자 동창에게 검찰이 1심에서 징역 5년을 구형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A씨 어머니는 해당 게시물에서 “절친들과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부산 여행을 간 예쁘고 착한 제 딸아이가 친구의 폭행으로 죽음의 여행길이 돼 돌아왔다”며 “외상성 경추 두부성 뇌출혈로 현재 사지 마비 식물인간 상태”라고 호소했다. 이어 “고마운 딸아이의 길고 긴 병상 생활을 지켜보며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2년을 버텨온 우리는 청천벽력 같은 검사의 5년 구형을 들었다”고 토로했다. A씨 어머니는 딸을 폭행한 B씨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며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는 모습을 지적하며 “1년간 편히 일상생활하며 술 마시고 PC방 다니며 게임질하는 나쁜 가해자의 소식을 들으며 참고 참은 대가가 고작 5년이란다. 앞으로 딸 목숨은 길어야 2, 3년이라는데 세상에 아무리 우리나라 법이 X같아도 이건 아니다”라고 절규했다.
논란이 커지자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일주일 뒤 “구형 상향을 검토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리고 선고 이틀 전인 지난 4월 30일 1심 재판부에 징역 8년의 구형 변경 의견서를 제출했다.
여행 하루 만에 홀로 돌아온 딸
A씨의 비극은 지난해 2월 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찰에 따르면 전북 군산에 사는 A씨는 중학교 때부터 우정을 쌓아온 여자 1명, 남자 2명 등 동창 3명과 함께 부산으로 2박 3일 여행을 떠났다가 이튿날 새벽 4시쯤 도망치듯 혼자 KTX 열차에 몸을 실었다.
약 1시간 전 부산 숙소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잠을 자던 중 남자 동창 B씨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기 때문이다. B씨는 침대에 앉아있던 A씨 머리를 밀친 뒤 몸을 잡고 바닥에 힘껏 내동댕이쳤다. 이에 A씨는 뒤로 넘어지면서 뒷목을 테이블에 부딪힌 뒤 바닥에 떨어졌다.
머리와 목뼈 등을 다친 A씨는 군산에 있는 다른 친구에게 기차표 예매를 부탁한 뒤 서둘러 부산을 벗어났다. A씨는 열차 안에서 가는 내내 구토했다. B씨에게 맞은 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기 때문이다. A씨는 군산 친구 집에 머물다가 오후에 동네 병원을 찾았다. “뇌출혈이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의사 말을 듣고 익산 원광대병원으로 향했다.
딸이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 A씨 어머니는 가슴이 철렁했다.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만 해도 멀쩡했던 딸이 졸지에 중환자가 돼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 질문에도 A씨는 부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입을 열지 않으려 했다. 그저 “술을 마시고 혼자 넘어졌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딸 행동이 석연치 않았던 A씨 어머니는 함께 여행을 떠난 동창 2명에게 전화했다. 계속 통화가 안 되자 ‘○○(딸) 상태가 심각하다. 나중에 ○○이 세상에 없을 때 원망 소리 들을래? 상황이 짐작 가니 숨길 생각 하지 말고 연락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후 친구들로부터 진실을 전해 들은 A씨 어머니는 억장이 무너졌다. A씨는 갈수록 건강이 나날이 나빠져 같은 달 13일 의식을 잃었고 식물인간이 됐다. 폭행당한 지 불과 엿새 만이었다.
178㎝ 건장한 남성이 44㎏ 피해자 내동댕이
A씨 어머니는 B씨를 중상해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검찰은 지난해 7월 19일 B씨를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 조사 결과 사건 당일 A씨는 술에 취해 숙소에서 잠을 자던 중 여자 동창과 B씨가 자신을 욕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말다툼에 이어 B씨가 욕설을 섞어 A씨 머리를 밀쳤고, A씨가 저항하자 B씨 폭행 수위가 높아졌다. 옆에 있던 여자 동창이 말려봤지만 B씨는 “너도 죽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라며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법원에 따르면 B씨는 A씨에게 범행하기 반년 전에도 비슷한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22년 7월 헤어진 여자 친구(당시 17세)의 친구를 폭행한 혐의로 벌금 1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법원 "치명적 상해 쉽사리 예견"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부장 정성민)는 지난 2일 “피고인의 범행으로 피해자가 중한 상해를 입을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B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B씨는 재판 내내 “폭행한 건 맞지만, 중상해를 입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 부장판사는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엔 신체적으로 상당한 격차가 있는 데다 (범행 당시) 성인 여성 2명이 대항하기 어려울 정도의 강력한 힘이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A씨는 44㎏의 가냘픈 체구인 반면 B씨는 키 178㎝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폭행이 발생한 호텔 내부에 침대 2개가 인접해 있고, 침대 하단 쪽 벽면에 테이블이 있어 몸싸움이 발생할 경우 침대 프레임이나 테이블에 부딪혀 치명적인 상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쉽사리 예견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도 폭행이 중상해로 이어질 것을 예견할 수 있는 정황 중 하나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생존을 위해 인공호흡기의 보조가 항시 필요하고 식이, 대소변 처리, 욕창 방지를 위한 자세 변경 등 모든 일에 타인의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하다”며 “피해자 부모는 어린 나이의 딸이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고통을 받았는데, 이에 더해 지속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상당한 액수의 의료비·간병비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이튿날 바로 항소장을 제출했고, B씨도 “형이 너무 무겁다”며 일주일 뒤 항소해 판결은 2심에서 가려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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