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날이 다가왔다. 5·18 민주화운동 44주년. 젊은 날 목이 터져라 불렀던 노래를 조용히 불러본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군복 바지에 낡은 티셔츠를 입은 야무지고 올찬 모습의 그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호남 최초의 야학 ‘들불야학’ 창립자 박기순. 샛별처럼 빛났던 전남대 학생은 광주 첫 위장 취업자로, 노동자를 가르친 노동자다. 1978년 겨울, 사흘 밤낮을 새운 그는 늦은 밤 야산에 올라 야학을 따뜻하게 할 땔감을 주워 내려온 후 머나먼 길을 떠났다.
서울에서 은행을 다니다 기순의 권유로 노동자 곁으로 돌아온 윤상원. 기순이 허망하게 떠난 날 상원은 ‘불꽃처럼 살다 간 누이야. 왜 말없이 눈을 감았는가. 모든 사람이 서럽게 운다‘고 일기를 썼다. 1년 6개월 후 ’5·18 시민군 대변인‘ 상원은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계엄군의 총을 맞고 쓰러졌다.
1982년 2월 20일,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신랑 윤상원, 신부 박기순. 슬픈 영혼결혼식이다. 짧지만 빛났던 두 청춘을 그리며 땅도 나무도 겨울도 울었다. 두 달 뒤 불꽃처럼 살다 간 두 영혼이 서린 노래가 엄숙하게 울려 퍼졌다. 소설가 황석영이 시민사회운동가 백기완의 옥중 시 ‘묏비나리’를 바탕으로 노랫말을 썼고, 노동운동가 김종률이 작곡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임은 사모하는 사람을 뜻한다. 윤상원·박기순 열사다. 5·18 민주화운동을 널리 알린 이 노래의 원래 제목은 ‘님을 위한 행진곡’이다. 표준어 규정에 따라 님이 임으로 바뀌었다.
열사는 '맨몸'으로 저항하다 죽음으로써 위대성을 보인 사람이다. 이준 유관순 박열 박종철 이한열… 우리 역사엔 수많은 열사가 있다.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등은 이름 뒤에 의사가 붙는다. 총이나 폭탄 등 '무력'으로 항거하다 의롭게 숨진 분들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몸 바쳐 일할 뜻을 가진 사람은 지사다. 의사와 열사가 순국한 뒤 붙일 수 있는 호칭이라면 지사는 생전에도 쓸 수 있다. 김구 박열 김원봉 등이 살아 활동하는 동안 애국지사로 불린 이유다.
얼마 전 방영된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몰락이 노래에서 시작됐음을 알려준다. ‘친구’ ‘아침이슬’ ‘상록수’…. 가슴을 울리는 노래는 민중을 위로했고, 때론 태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2024년 5월, 우리는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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