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5월이 시작되고 아파트 단지에 장난감 꾸러미를 든 젊은 가장들이 하나둘 눈에 띈다. 무거운 선물 탓일까? 가장들의 양손은 땅끝에서 치솟은 그림자와 맞닿아 있었지만 해 질 녘 길어진 그림자 때문이겠거니 생각했다. 실루엣 속에 감춰진 가장들의 미소를 느끼며 정신줄 놓은 '아재'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린 시절 나에게 어린이날은 학교에 가지 않는 날, 눈치 안 보고 아침부터 주야장천 방영되는 만화영화를 맘 놓고 볼 수 있는 날 정도로만 기억된다. 먹고살기에 매진하셨던 부모님에게 낭만스러운 가족끼리의 여가는 사치였고 그 사정은 여느 가정도 마찬가지였기에 부러움의 대상이 없었음은 당연했다.
"어린이날 선물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초등학교 고학년에 들어설 무렵 어린이날을 앞두고 아버지로부터 난생처음 선물을 사주신다는 말을 들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아버지의 감언을 잠시 의심했지만 들뜬 마음으로 선물 목록을 적어 내려갔다. 꾹꾹 눌러쓴 목록은 갱지의 다음 그리고 그다음 페이지까지 판박이처럼 전이됐다. 전자기타, 카메라, 카세트플레이어, 천체망원경…. 작성된 나의 희망사항들은 당시 살던 동네와 관련이 많았다. 미군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어서 미군의 자녀에게 음악·과학 잡지를 얻어 읽었고 그들과 같이 AFKN(주한미군방송·American Forces Korean Network)을 시청하며 눈길을 끌었던 팝이나 록에 관련된 아이템들이 관심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은 희망목록을 작성했던 순간뿐이었다. "그 따위 것을 배워서 밥이나 빌어먹고 살 수 있겠냐?" 범상치 않은 선물 목록을 받아 든 아버지의 표정은 굳어졌고 선물은커녕 한참 동안 '이유 없는' 야단을 맞아야 했다. 선물의 답은 이미 아버지 마음속에 정해져 있었다. 사실 부모님께서 원했던 바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마치 함정수사를 당한 것 같은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앞섰다. 열심히 일해서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며, 그 노력에 자식도 '알아서' '잘' 부응해 주길 기대하셨다. 아버지의 한 친구의 아들은 선물로 참고서를 사달라고 했다는 둥, 다른 친구의 아들은 어버이날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저금통을 사달라고 했다는 둥 믿지 못할 잔소리 레퍼토리들이 뒤따랐다. 실존하는지도 모를 미상인의 아들들을 미워한 적도 많다.
금지와 반대가 계속되며 부자지간의 어색함은 화석처럼 켜켜이 쌓였고 그 촘촘함은 오히려 간섭을 막아주며 편안함을 오랫동안 유지시켜 주었다.
최근 7080 세대들이나 그 이전세대들과 대화를 나누며 살아온 날들을 공유하다 보니 나와 비슷한 이유로 아버지와 어색한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어려웠던 삶을 되물려 주고 싶지 않아 당신이 잘 아는 길로 안내하며 받아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었던 사랑을 서투르게 표현했을 뿐이라는 것을 그때 아버지의 나이가 돼서 늦게나마 깨우친다.
글을 쓰며 틀어놨던 가수 고(故) 신해철의 '아버지와 나 part1'이 자꾸 귓가에 맴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비비며 /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 이제 내가 하고 있다 /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 그의 모습을 닮아가는 나를 보며 /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이젠 아버지가 주셨던 서투른 사랑을 세련되게 포장해 되돌려드려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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