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서재]
"18세기 인권 개념의 탄생은
싸구려 통속 소설의 유행 덕분
혐오, 차별 문제가 고민된다면
어려서부터 문학 작품 읽혀야"
편집자주
로마시대 철학자 키케로는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몸과 같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책이 뭐길래, 어떤 사람들은 집의 방 한 칸을 통째로 책에 내어주는 걸까요. 서재가 품은 한 사람의 우주에 빠져 들어가 봅니다.
"요즘 우리 시대 최대의 고민은 혐오, 증오, 분노 같은 거잖아요. 그런데 뇌신경학자들이 쓴 책을 보면 혐오, 증오, 분노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노출을 늘리는 거래요. 자주자주, 그리고 오래 노출시키면 '아,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구나'라고 느끼면서 그 대상에 대한 거부감이 차츰 줄어든다는 거지요. 이 노출을 가장 많이,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게 뭘까요. 전 문학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문학이 가치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이 딱 맞죠. '인권의 발명'."
서평가로서 딱 한 권의 책을 꼽아달라고 하자 김미옥(66)씨는 망설이지 않고 서재에서 한 권을 꺼내왔다. '인권의 발명'(교유서가 발행). 프랑스사, 특히 혁명사를 파고들어 이름을 얻은 미국의 사학자 린 헌트의 책이다. 프랑스혁명이라면 계몽주의, 계몽주의라면 우리는 흔히 '천부인권'을 떠올린다.
헌트는 이 책을 통해 의문을 제기한다. 천부인권 같은 추상적 사고에 대중들이 논리적으로 설득됐다고? 그보다 인권 개념은 대중들의 마음속에서 '발명'됐다고 보는 게 옳다는 주장을 담았다. 헌트는 특히 18세기 대중소설, 특히 싸구려 통속 소설의 유행에 주목했다. 그 책을 읽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의 깊이와 폭이 넓어지면서 인권의 개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헌트는 프랑스대혁명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당대의 포르노그래피를 지목한 학자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 절대 권력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정치적 비토는, 그 대상을 포르노 주인공으로 취급해버리는 유언비어다.
"제가 이 책이 너무 좋다니까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분들도 계신데, 전 이 책을 읽자마자 바로 이해했어요. 인권이란 게 대단한 논리, 거창한 선언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대한 작은 공감에서 시작하는 거거든요. 공감 또한 그저 그런 대중소설을 읽고 눈물지을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는 거예요. 이거 참 음미할수록 괜찮은 얘기지 않나요. 소수자, 인권, 혐오, 차별 같은 문제를 고민한다? 어릴 적부터 문학을 꾸준히 읽히는 게 해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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